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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는 잊으라. 그러나 『기타이』는 기억하라.˝」 |  | |
| 명상과 혁명 비노바 바베」중에서 발췌한 글
- 칼린디 지음/김문호 옮김, 실천문학사, 2000.10.3 -
○ ˝이상하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나는 이 세상이 아닌 다른 세계에 속한 사람이다. 나는 항상 사랑을 느끼고, 사랑으로 인해 감동받고 있다.
사랑과 사상만큼 강한 힘을 가진 것도 없다. 조직도, 정부도, 경전도, 무기도, 사랑과 사상을 당할 수는 없다. 나는 사랑과 사상이 진정한 힘의 유일한 근원이라고 믿는다.˝
비노바 바베는 현대 인도의 위대한 정신적 지도자이자 사회개혁가로 손꼽히는 인물이다. 그의 활동과 인격적인 모범은 인도의 역대 수상부터 가난한 서민에 이르기까지 모든 인도인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1895년에 태어난 그는 열 살의 어린 나이에 평생을 독신으로 지내며 인류를 위해 헌신하기로 서약하였다. 영적인 진리와 실천적인 행동을 구체적으로 담아낼 수 있는 삶의 길을 찾던 중 간디를 만났고, 인도를 갱생시키기 위한 간디의 활동에 합류하였다.
1940년에 간디는 ´비폭력저항운동(사티야그라하)´을 이끌 최고의 지도자로 비노바를 선정하였다. 인도가 독립을 얻자 비노바는 전대미문의 ´부단 운동(토지헌납운동)´을 시작하였다. 20년이 넘는 긴 세월 동안 인도 전역을 걸어다니며 지주들을 만났고, 가난한 이웃들에게 땅을 내어주도록 설득하여, 스코틀랜드만한 거대한 토지를 헌납받았다.
비노바는 평생동안 인도의 정신적 전승에 대한 연구는 물론, 세계의 큰 종교들의 거룩한 전승에 대한 연구에 정진하였고, 그의 사회적 활동은 그러한 연구에 기초한 것이었다. 비노바가 태어난 지 백년 만에 빛을 보게 된 이 회고록은 흔들림 없는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비폭력을 실천하고, 영성을 추구하며, 사랑의 힘을 간직해 온 한 위대한 인물의 내적인 삶과 외적인 삶을 두루 밝혀줄 것이다.
시작하면서 (p.29∼32)
「사람들이 나를 이상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나는 이 세상이 아닌 다른 세계에 속한 사람이다. 나는 사랑으로 감동을 받고 있으며, 항상 그것을 느끼고 있다.」
「사랑과 사상만큼 강한 힘을 가진 것은 없다. 조직도, 정부도, ´무슨 무슨 주의´도 경전도, 무기도 사랑과 사상을 당할 수는 없다. 나는 이런 사랑과 사상이 진정한 힘의 유일한 근원이라고 믿는다.」
「어떤 사람들은 나를 힌두라고 부르지만, 나는 코란과 성서를 꾸준히 연구하였고, 결국 힌두교를 버리게 되었다. 사람들은 내가 말하는 것을 좋아한다. 나의 활동이 자비와 사랑과 사상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념들을 가지고 있으나 고정되어 굳어버린 견해들은 가지고 있지 않다. 실제로 나는 너무나 변덕스러워서 오늘은 이런 견해를 말하고 또 서슴지 않고 내일은 저런 견해를 밝힌다.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나가 아니다. 나는 매순간 다르게 생각하며 항상 변화를 계속하고 있다.」
「모두가 나의 친족이요 나도 그들의 친족이다. 그 친족들 간에서 나는 어떤 사람은 더 사랑하고 또 어떤 사람은 덜 사랑하고자 하는 마음은 없다.」
「나는 어떤 문제를 보면 그 문제 깊숙이 뚫고 들어가 그 근원까지 파악하지 못하면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 나는 30여 년 동안을 외로운 생각 속에서 지냈다. 물론 그간에도 내가 베풀 수 있는 섬김의 일은 하였다. 나는 나의 삶이 섬기는 삶이 되기를 원했으나, 그간의 나의 삶은 성찰하는 삶이었다. 나의 성찰은 사회에서 일어날 수밖에 없는 변화들과 그러한 변화의 뿌리들을 어떻게 정화시킬 것인가에 관한 성찰이었다. 나는 이제 나의 기본적인 생각을 명석하게 정리했으며, 따라서 이제 어떤 문제도 두렵지 않다. 그 문제가 어떤 문제든, 아무리 큰 문제일지라도 나에게는 작은 일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내가 그 문제보다 크기 때문이다. 그 문제가 아무리 큰 것일지라도 결국 그것은 인간의 문제이며, 따라서 그것은 인간의 지성으로 해결될 수 있는 것이다.」
제1부 야생마와 같던 청년 시절(1895∼1916)
1. 고향 마을 (p.46∼47)
「성자 투카람도 너무나 가난하여 아내를 굶주림으로 죽게 했다. 그러나 그는 하느님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오 나의 하느님이여, 만일 슬픔이 없다면, 당신에 대한 기억도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슬픔 가운데에서 기쁨을 발견하고 이렇게 노래했다.
기쁨위에 기쁨이 넘쳐
내 가슴을 가득 채우고,
사랑은 끝없이 흐르는 시내가 되어
당신의 이름을 찬양하네.」
3. 어머니의 믿음이 나를 만들었다 (p.57∼75)
인간의 노력과 하느님의 은총이 만나는 자리
「나의 정신을 형성함에 있어서 어머니가 했던 역할에 버금갈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나는 많은 훌륭한 사람들과 함께 살기도 하였고, 경험의 지혜로 가득 찬 위대한 인물들의 책들도 읽었다. 그러나 만일 이 모든 것들을 천칭저울 한 접시에 올려놓고 다른 한 접시에 내가 어머니에게서 배운 실천적인 신앙을 놓는다면, 저울추는 두 번째 접시 쪽으로 기울 것이다.」
금욕적 이상을 전해 주신 분
「어머니께서 들려주신 말씀들은 나에게 너무나 큰 영향을 주어 그것들을 나의 저서 『비차르 포티(단편적인 명상들)』에 수록하였다.
비냐, 많은 도움을 구하지 말아라. 작은 것은 아름답고, 큰 것은 불행이라는 것을 기억해 두거라.
배를 채울 만큼의 음식과 몸을 가릴 만한 의복, 그것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의 전부이다.
지혜로운 자들의 말과 신들의 말과 성자들의 말 이외에는 아무것도 귀담아 듣지 마라.
너는 조국을 섬기는 일 가운데서 하느님에 대한 너의 신앙을 보여주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 앞에서 신앙의 노래들을 빠뜨리지 않도록 하여라.」
제3부 멍에를 지다(1951∼1969)
「나는 나면서부터 냉정한 사람이라는 것을 미리 밝혀두어야 할 것 같다. 나는 누가 죽어도 애통할 것도 없고, 누가 태어나도 기쁠 것도 없으며, 누가 병들어도 크게 불안하지도 않다. 그러나 부단(토지헌납) 운동의 경험들은 나를 많이 부드럽게 만들어 주었다. 그래서 이제는 내 마음도 곧잘 흔들리곤 한다. 나는 박티의 선물, 즉 하느님께 바치는 사랑의 헌신이라는 선물을 받았다. 그 선물은 이전에는 내가 모든 명상과 지식을 동원하여 노력해도 다다를 수 없었던 바로 그것이었다. 나는 지극히 신성한 경험들을 하였다. 나는 평범한 사람들 가운데서 위대한 마음의 순결함을 발견할 수 있었고, 이러한 순결함이 우리 조국에 얼마나 큰 힘이 되고 있는가를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p.224)
16. 공부하기, 가르치기, 쓰기
공부하기와 가르치기 (p.332∼335)
「『우파니샤드』는 우리에게 이렇게 명령하였다.
˝진리를 따르고, 경전을 공부하고 가르치라. 마음의 평화를 실천하고, 생각을 지배하며, 경전을 공부하고 가르치라. 감각을 지배하고, 경전을 공부하고 가르치라. 손님을 공경하고 섬기며, 경전을 공부하고 가르치라.˝」
「나는 평생 동안 공부하는 학생이었고, 결코 공부를 놓아본 일이 없다. 공부하는 재미를 아는 사람은 절대로 공부를 포기할 수 없는 법. 공부하는 사람은 여러 가지 지식을 추구해야 한다. 정신적인 지식, 과학적인 지식, 건강의 원칙들에 관한 지식, 의학적인 지식 등, 바로 그것이 나의 목표였다. 나는 어느 대학생 못지 않게 전심전력으로 공부하였으며, 부단 운동과 그람단 순례를 하는 동안에도 즐곧 공부를 놓지 않았다.
나의 공부는 당시의 시류를 따라서 1901년에 가고데에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교육은 바로다에서 지내던 11년 동안에 이루어진 것이었다. 그 기간 동안에 나는 그야말로 수천 권의 책을 읽었다. 내가 그 모든 책을을 완벽하게 정독한 것은 아니고, 그 가운데 일부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연구를 했고, 또 일부는 기억에 남기도 하지만, 어떤 책들은 닥치는 대로 읽었다. 당시 나에게 가장 크게 영향을 끼쳤던 것은 마라티 성자들의 책들이었다. 마라티어는 내가 태어나면서부터 배운 말이었고, 따라서 크게 노력하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에 그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나는 『베다』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1918년의 일이었고, 1969년에 그 과제를 완수하였다. 그 오십여 년 동안 나는 『베다』와 『우파니샤드』와 다른 산스크리트의 영성적인 책들을 연구하였다. 이런 식으로 나는 영성적인 책들과 종교적인 문헌들을 많이 읽었다. 하지만 나는 『베다』를 그 모든 것들의 핵심 가운데 진수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제 1975년, 노년에 접어든 나는 샹카라차리야의 명령에 따라서 두 권의 책에 몸을 의지하고 있다. 『기타』와 『비시누사하스라나마』이다. 낮이나 밤이나, 잘 때나 깨어 있을 때나 비시누 신의 천 개의 이름들이라는 『사하스라나마』는 항상 내 곁을 떠나지 않고 있다.
그렇게 나는 내 인생의 첫 단계에서 마라티의 다섯 성자들의 영향을 받았으며, 두 번째 단계에서는 주로 『베다』의 영향을 받았고, 세 번째 단계에서는 『비시누사하스라나마』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고 있다. 앞으로는 어떤 책이든 모든 책으로부터 자유롭게 되리라!」
구루 나낙 (p.346)
「˝구루나낙˝ 그는 이렇게 말했다.
˝가장 큰 문제는 우리가 어떻게 거짓의 휘장을 찢어버리고 진리에 도달하느냐 하는 것이다. 명상과 성찰은 진실한 자들에게만 유익이 된다. 그리고 진실한 사람이 되는 방법은 신이 정한 길을 따르는 것이고, 그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이며, 그의 가르침에 따르는 것이다.˝
그가 행한 영적 수련의 모든 것은 두 단어로 요약될 수 있다. ´니르바우´, 즉 ´두려움 없이´와 니르바이루´, 즉 ´증오심 없이´이다. 이 두 단어 안에 오늘날 인류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들의 해결책이 있다. 우리 일의 목적 때문에 나는 거기에 한 단어를 더하고자 한다. ´니쉬파크샤´, 즉 ´당파심이 없이´이다. 『지푸지』 자체가 이러한 속성을 지적하고 있다. 그 경전에는 이미 ´만일 어떤 사람이 그것에 생각을 둔다면, 그는 분파적인 길을 가지 않을 것이다´라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나마고샤』(p.347)
「그런 종류의 선집들은 때로는 독자들의 관심을 일깨워 원작들을 읽도록 유도하기 위해서 만들어지고 있다. 그러나 나의 의도는 정반대이다. 그것은 정신적인 것을 추구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선별된 구절들을 소화하게 함으로써 그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찾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그래야만 그는 많은 양의 원저들을 다 찾아다니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될 것이고, 내가 겪었던 모든 힘겨운 일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기타 이야기』(p.348∼349)
「『기타 프라바찬(기타 이야기)』은 1932년 둘리아 감옥에서 태어났다. 내가 이야기를 할 때면, 사네 구루지의 행운의 손이 내 이야기들을 적어내려 갔다. 하느님의 뜻이었던지 나의 이 이야기들은 이제 인도의 거의 모든 언어로 번역되었고 온 나라의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있다.」
「『기타 이야기』만은 계속 섬김이 되리라고 나는 확신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도 그럴 것이 나는 『기타이』를 쓸 때나, 『기타 이야기』를 할 때, 사마디의 상태, 즉 세상을 초월한 의식상태에서 했기 때문이다.
내가 쓴 책들 가운데 어느 것도 진실로 나의 것이란 없다. 나는 스승들로부터 무언가를 받았고, 그것을 나누어 주었을 뿐이다.
시인은 이렇게 말한다.
˝설사 내가 하느님의 거대한 무변의 지식의 바다에서 물고기처럼 헤엄을 친다고 하더라도, 나의 목마른 정신은 결코 만족을 얻을 수 없을 것이다.˝
나는 단순히 내가 받았던 풍요로운 생각의 한 부분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있는 것이다. 나는 큰 도매상들에게서 얻은 물건을 팔고 있는 작은 구멍가게 주인에 불과하다.
˝그 메시지는 성자들의 것이다. 여기에는 비냐의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다.˝」
18. 카르마와 비카르마
기도 (p.378)
「간디 선생이 살아 있을 때 우리는 또한 모든 종교적 전통들로부터 가져온 기도문들을 사용하였다. 서로 다른 종교와 언어를 가진 사람들이 함께 모이는 경우에는 그렇게 하는 것이 좋다. 그러나 그것은 아무래도 상관이 없는 일종의 ´키차디´, 즉 여러 가지를 섞어서 굽는 석쇠와도 같은 것이다. 거기서 주가 되는 생각은 하느님을 기쁘게 하자는 것이라기보다는 우리의 동료들을 기쁘게 하자는 것이다. 더 나아가서 만일 우리가 인간을 하나님의 한 표상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러한 관행을 잘못된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한 끝에 나는 공동의 기도를 위해서는 침묵의 기도가 최선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침묵은 모든 사람들의 요구를 만족시킬 수 있으며, 거기서 점점 더 심오한 의미를 발견해 갈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나 자신의 경험을 통해서 이것을 검증할 수 있었다.」
침묵, 잠과 꿈의 정복자 (p.379∼382)
「사실상 내가 침묵의 기도를 올려온 것은 오래 전부터의 일이다. 처음에 나는 일종의 영적인 수련으로, 명상을 위해서 마음을 완전히 자유롭게 유지하기 위해서 침묵의 기도를 시작하였다. 내가 기억하기로는 1927년에 몇 가지 개인적인 이유들 때문에 나는 침묵의 서약을 하였다. 두달 동안 저녁기도 이후에는 침묵을 지키기로 작정했던 것이다. 작정한 기간이 끝난 후에도 나는 계속 그 서약을 지켰고, 아예 영구적인 규칙으로 삼았다.」
「내가 침묵을 지키는 것은 ´현실적인´ 이유들 때문이 아니었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기타』 8장에 나온다. 그 장은 생애의 마지막 시간에 마음을 하느님에게로 향하는 것의 중요함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기타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우리가 온 평생을 행할 때에만 가능한 것이며, 평생 동안의 관습의 열매인 것이다. 따라서 연극의 마지막 장면이라 할 수 있는 생애의 마지막 시간은 매일 연습을 해두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언제 어떻게 생애를 마감하게 될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일, 그러나 매일의 삶은 잠으로 끝나게 되며, 매일의 경험은 죽음을 조금씩 맛보는 것이 아닌가. 만일 우리가 매일 자기 전에 마지막 장면을 잘 해낸다면, 생애의 마지막 시간이 다가올 때 우리는 승리를 손에 넣게 되리라. 이치가 그러하니 하느님에 대해서 거룩하게 명상하는 가운데 매일 잠자리에 들고, 매일의 작은 죽음을 맞이하도록 하자. 나는 그렇게 생각했던 것이다.」
「침묵을 수행하던 첫날부터 놀라운 마음의 평화가 찾아왔다. 나는 말하기를 중단하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정신적인 고전들을 읽고 그 읽은 것들에 대해서 성찰하고 명상하였다. 이런 수행이 내게 준 마음의 평화는 새로운 경험이었다. 참으로 놀라운 경험이 아닐 수 없었다. 그 수행을 통해서 나는 관념이 어떻게 자라고 발전하는가 하는 것을 과학적으로 포착할 수 있게 되었다. 관념들은 밭에 뿌리고 흙으로 덮어둔 씨앗들과 같아서, 며칠이 지나 싹이 땅 위로 올라오기까지는 땅 속에서 자라는 것이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기도와 명상과 성찰을 수행하는 사람의 생각을 잠이라는 흙 속에 묻어두면, 그 생각들이 그 사람이 깨어 있을 때에는 떠오르지 않았던 문제의 해결책들이 싹을 틔울 수 있도록 만들어 준다. 깊은 ´사마디´에 빠져 있는 동안에도 생각은 발전할 수 있다. 그러나 잠은 훨씬 유익한 것일 수 있다. 기도를 올린 후에 다른 생각을 품지 않고 바로 잠들게 되면, 침묵이나 명상이나 영적인 성찰의 속성들이 잠 속에서 더 풍성해진다는 것을 나는 경험을 통하여 발견하였다. 상카라차리야는 ´잠은 사마디의 상태이다´라고 말했다. 나의 침묵의 경험은 이런 방식으로 점차 확고하게 자리를 잡게 되었다.
나는 잠과 꿈을 통제하는 능력에 대해서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낮에 하는 일들은 우리의 잠이나 꿈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행해져야 한다. 우리가 꿈꾸는 것들은 우리가 좋아하는 것이나 싫어하는 것이다. 우리가 깨어 있는 동안의 사랑과 미움은 우리의 꿈에 반영되어 나타난다.」
「그래서 나는 종종 장기를 두러 갔다. 그러던 어느날 나는 장기 두는 꿈을 꾸었다. 그래서 그 이튿날 아침 나는 한동안 장기를 두지 않기로 결심하였다. 어떤 일이 정신에 영향을 너무나 많이 끼쳐서 우리가 그것에 대해서 꿈을 꿀 정도라면, 우리는 그것을 끊어야 한다.」
명상 (p.382∼385)
「사람들이 명상을 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어떤 사람들은 하느님을 어머니로 보고, 어떤 사람들은 아버지로 이해하며, 어떤 이들은 구루로, 또 어떤 이들은 거룩한 스승으로 본다. 하느님을 어머니로 생각하는 것은 나의 습관이었다. 우정 또한 나의 삶에서 특별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며, 구루에 대한 공경심도 있었다. 따라서 하느님을 구루로 생각하는 것 역시 나에게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나는 1964년에 이 모든 사고양태들은 한계를 가지고 있는 것들이라는 생각이 들어 그런 것들을 포기하였다. 당시 나는 장티푸스에 걸려 몸이 몹시 쇠약한 상태였으며, 병석에 있는 동안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처음 며칠 동안 나는 완전히 생각에 몰두하였고, 이렇게 한계가 있는 정신적 상상력의 형식들을 포기하게 된 것은 바로 그때였다. 그러나 오래도록 몸에 붙은 습관은 버리기가 어려운 법. 그래서 하느님을 어머니로 또는 구루로 표현하는 글을 읽노라면 내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였다. 그러나 나의 감정이 아무리 순수한 것일지라도, 이런 눈물은 한계를 나타내는 증표들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한계들이 명상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 그런 것들의 한계를 인식한다는 이유로 그것들을 포기하는 것은 아무 득도 없는 일이다. 그런 사고양태는 인간의 정신을 위해서 어느 정도는 필요한 것이다. 눈에 보이는 이미지들과 상들은 또한 하느님의 속성들을 명상하는 데 도움이 되며, 우리의 삶의 모습들을 그런 모습을 좇아서 만들어나가도록 우리에게 영감을 주기도 한다. 나는 명상에서 그런 이미지들을 이런 식으로 사용해 왔다.
나는 젊은 시절에 바로다에 있는 불상에 대해서 명상을 하곤 했다. 어린 시절에도 나는 마하라슈트라 성자들의 찬가에 익숙했었고, 그리하여 비토바에게 귀의하게 되었다. 나는 비토바의 신상에 대해서 명상하였으며, 그렇게 명상을 하는 가운데 비토바는 사회 진화에서 네 번째 단계를 표현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첫 단계는 모든 사람이 각기 누구를 좋아하든 자기 나름대로의 무기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두 번째 단계는 개인은 모든 무기를 포기하고 하나의 재판관이나 행정부의 명령에 따라 살기로 동의하는 단계이다. 세 번째 단계는 정부마저도 무기를 포기하고 모든 것을 신에게 맡기고, 신의 무기를 사용하여 의로운 자들을 보호해 주고 악한 자들을 벌하도록 할 때 도달되는 것이다. 네 번째 단계는 신 자신도 무기를 포기하고 더 이상 벌을 주지 않으며, 용서만을 하게 될 때 오게 된다. 비토바라는 인간의 형상으로 나타나는 비시누신은 손에 아무런 무기도 들고 있지 않다. 간단히 말하자면 우리가 명상을 위해서 신의 형상을 사용할 때 조차 우리는 그 신상이 표현하는 선한 성품들에 대해서 명상하고 그런 성품들을 받아들이고자 해야 하는 것이다.
이곳 브라마비디야 만디르의 내 방 맞은편에는 갠지스강의 여신상이 있다. 나는 아침 저녁으로 명상을 할 때 그 여신상을 바라본다. 그 여신상의 눈동자에는 자비가 담겨 있고, 얼굴에는 기쁨이, 가슴에는 친절이, 그리고 몸에는 힘이 어려 있다. 그 석상은 모든 덕을 한 몸에 지닌 채 그렇게 내 앞에 서 있다. 나는 바라타-라마 상을 그런 식으로 명상을 할 때 떠올리곤 하였다.
하지만 내 방에는 그런 것들이 있는 것을 원치 않는다. 나는 물질적인 이미지보다는 정신적인 이미지를 더 좋아한다. 정신적인 이미지는 경계가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서 예수에 대한 명상은 지고한 사랑의 계시에 대한 명상이 된다. 예수는 그의 백성들을 위해서 자신을 재물로 내주었으며, 그래서 나는 그를 통해서 하느님의 사랑과 지고의 희생에 대해서 명상한다.
나는 또한 청결함을 명상의 수단으로 생각한다. 나에게 있어서 청결함이란 일종의 영적인 어떤 것이며, 그래서 나는 청결함을 그렇게 사용하고 있다. 1970년, 내가 브라마비디야 만디르에 정착했을 때, 나는 규칙적으로 청소하는 일을 시작하였고, 청소를 할 때면 내가 내면적으로 명상의 경험과 더 밀접해지는 것을 느끼기도 하였고, 심지어는 ´사미디´를 느끼기도 하였다. 이는 내가 청소를 일종의 명상의 작업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명상이란 종종 외적인 대상물로부터 정신을 물러나게 하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나는 반문한다. 왜 물러나는가? 그것은 오로지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을 ´인식하기´ 위한 것이다. 만일 정신이 이곳저곳을 헤매고 다닌다면, 그것을 따라가고, 방관자처럼 그것이 가는 대로 놓아두고 그것을 주목하라.」
정신을 뛰어넘는 일 (p.385∼386)
「내 나이 삼십쯤 되었을 때, 나는 말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놀라운 경험을 한 일이 있다. 그러나 그 이후로 나의 마음은 말 그대로 ´마음을 벗어나´ 있었다. 명상을 하려고 자리에 앉으면 내 마음이 사라지는 것만 같았다.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었고, 나는 거기에 홀로 있었다. 좀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나´라는 말은 구체적인 것을 표현한다. 그러나 그 구체적인 나는 사라지고 아무것도 없고 오로지 무한한 하늘만 남아 있다.
나는 정신을 집중하기 위해 아무런 노력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노력이란 몇 가지 일들에 동시에 관심을 기울일 때 필요한 것이다. 내 정신의 표면은 닫혀 있으며, 나는 단지 말을 할 필요가 있을 때에만 그것을 열어 놓는다. 나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동안에도 실제로는 그 대화의 밖에 있다. 나는 수영하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물에 가라앉지 않고 수면에 떠 있는 것이다. 만일 수영하는 사람이 물에 가라앉는다면 그는 익사하고 말 것 아닌가! 이와 마찬가지로 나는 표면적으로 걷고 말하고 웃고 일한다. 나는 빠지지 않는다.
내 방에는 벽에 균열이 있어, 그 틈을 통해서 노동자들이 우물에서 일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때때로 그들을 바라보거나, 혹은 단순히 재미삼아서 다른 것들을 내다본다. 그러나 그 어떤 것도 내 정신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못한다.」
선한 것을 공경함 (p.388∼390)
「그런데 후에 또 한 가지 생각이 들었다. ´나의´ 결함으로 나타나는 것들은 실제로는 나의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었다. 그런 결함들은 나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 나의 몸에 속한 것이다. 사실이 그렇다고 한다면 그런 것들에 대해서 왜 이야기를 해야 하는가? 그렇다면 다른 사람들의 부족함도 실제로는 그들의 것이 아니며, 그들의 몸과 함께 재로 사라지게 될 것이 아닌가.
오래 전 1918년에 나는 마하라슈트라를 걸어서 돌아다니고 있었고, 그때 북부 인도에서 온 한 여행객과 우연히 만나게 되었다. 그는 나와 나흘 동안 동행하였으며 그 이후로 남쪽으로 길을 떠났다. 그는 위대한 영혼을 가지고 있었고, 우리는 많은 일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그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인간은 모두 선과 악이 혼합되어 있는 존재인데, 그렇다면 하느님은 왜 인간과 같은 존재를 창조하는 수고를 하였을까요?˝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게 그런 것 같습니다. 당신도 아시다시피 하느님은 이기적입니다! 만일 하느님이 결함이 없는 완전한 인간을 창조하였다면, 인간은 하느님을 생각할 필요를 전혀 느끼지 않았겠지요. 그래서 하느님은 의도적으로 자신을 기억하게 만들려고 이런 장난을 하신 게 아니겠습니까!˝
그의 이런 생각은 나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그 이야기의 골자는 결점 없는 인간은 겸손함도 없을 것이라는 것이었다.
따라서 우리는 선한 것에만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선한 것은 곧 하느님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내가 새로 발견한 것이다. 나는 결함이 많은 피조물이다! 다른 사람들의 결함이든 나의 결함이든 결함에는 주목할 필요가 없다는 것, 그것이 나의 생각이다. 분명히 수많은 결함이 있다. 그러나 그 결함들과 더불어 최소한 한두 가지라도 좋은 점들이 있을 수밖에 없다. 하느님은 그런 좋은 점들이 없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만들지 않았다. 모든 사람들은 일정 정도 하느님의 선함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반면에 아무리 위대한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결함이 전혀 없는 사람은 없다. 하느님은 우리 모두에게 악과 선을 공유하도록 만드신 것이다. 선은 창문이며, 악은 벽이다. 가장 가난한 사람이라도 그의 집에는 우리가 들어갈 수 있는 문이 있다. 선한 것은 문이다. 그 문을 통해서 우리는 인간의 마음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벽을 뚫고 들어가려고 시도한다면, 결과는 우리의 머리만 깨질 뿐!
나는 이것을 깨달은 이후로는 선한 것에 관심을 기울여왔다. 나 자신 안에 있는 선함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사람들은 나를 비판하면서, 내가 오만하여 항상 나 자신을 찬양하는 노래를 부른다고 말한다. 그러면 어찌할 것인가? 내가 어찌 안에 있는 영혼을 찬양하지 않겠는가? 우리는 항상 다른 사람들과 우리 자신들 안에 있는 선한 것을 찾아야 하며, 미라바이가 노래했듯이 ´하느님의 선하심을 노래해야´ 한다. 선함만이 참된 것이다. 우리는 몸과 더불어 썩어 없어질 것들을 가지고 우리의 호흡을 낭비해서는 안 된다.」
애정을 기르는 것 (p.390)
「나는 이것을 격언의 형태로 만들었다. ´스네헤나 사하지바남´, 즉 인간 존재들은 서로간의 애정을 가지고 함께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내 인생의 가장 중요한 원칙이다. 어떤 경우에도 사람들을 보내서는 안 되며, 그들도 나를 떠나면 안 된다. 절대 떠나지 말라는 의미이다.」
빵을 위한 노동 (p.402∼403)
「그런 많은 실험 끝에 나는 정상적으로 건강한 사람은 여덟 시간만 쉬면 되고 그 이상의 휴식은 필요치 않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그래서 여덟 시간은 잠을 자야 한다.
나머지 열여섯 시간 가운데서 다섯 시간은 목욕하고, 밥 먹고, 다른 육체적인 요구들을 충족시키는 데 사용한다. 두 시간은 영성활동, 즉 기도와 신앙서적 읽기, 예배적인 의미를 지닌 실 잣기, 또는 다른 예배적인 활동을 해야 한다. 한 시간은 미처 끝내지 못한 일을 완결 짓기 위해서 완전히 자유시간으로 남겨두어야 한다. 이런 활동들은 총 여덟 시간에 이루어진다.
나머지 여덟 시간은 공적인 활동, 즉 겸손하게 이야기하자면 생활비를 버는 일에 할애되어야 한다. 어떤 말로 하더라도 차이는 없다. 하느님은 우리 모두에게 아주 큰 목적을 위해서 위장을 주셨다. 정직하게 일하여 우리의 위를 채우고, 우리의 몸을 건강하게 유지하는 것은 영성적인 활동이며, 영성적인 요구이다. 생계를 위해서 우리가 하는 일은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마련해 주며, 동시에 다른 사람들에게는 섬김이 된다. 다른 사람들에게서 빵을 빼앗는 일은 일이 아니라 도둑질이다. 그러나 신실함과 정직함으로,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착취함이 없이 농사를 짓는 농부나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는 공적인 섬김활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개인과 공동체 (p.405∼407)
「공동체 생활은 개인 생활이 올바른 질서를 잡는 일에 도움이 된다. 나는 간디 선생을 만난 이후로 종이 울리면 곧 일어났고, 기도를 빠뜨린 일이 없다. 만일 공동체 기도가 없었더라면, 나는 내 개인 생활의 질서를 세우는 일에 이렇게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사실상 우리는 생활을 공동체 생활과 개인 생활로 나누어서는 안 된다. 그 둘을 하나로 만들지 않으면 우리는 갈등을 하게 될 것이다. 개인의 행동들은 사회적인 것이어야 하며, 우리의 사회적인 행동은 개인적인 것이어야 한다. 개개인과 사회를 갈라놓는 벽이 있어서는 안 된다.
내 입장에서 보자면 나는 먹는 것이나 잠을 자는 것까지도 사회에 빚을 지고 있는 의무로 간주한다. 나는 개인적 행동과 사회적 행동을 구별하지 않으며, 나의 모든 행동을 사회에 대한 나의 섬김의 부분으로 소중하게 생각한다. 규칙적으로 잠자리에 드는 것, 건강하게 잘 자는 것,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는 것, 이 모든 일들은 나의 사회적 의무의 부분들이다. 나는 얼마나 많은 시간을 사회에 바치고 얼마나 많은 시간을 나의 사적인 일에 쓸 것인가를 계산하지 않는다. 하루 스물네 시간 동안에 이루어지는 나의 모든 행동들은 내가 사회에 기여하는 것이다. 그것은 나의 체험이다.
일반 평범한 사람들과 거의 접촉하지 않고 사는 사람은 하느님에 대한 직접적인 지식을 얻을 수 있는 큰 기회를 상실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하느님은 자신을 세 가지 방법으로 계시하시기 때문이다. 평범한 인간들 안에 계시하고, 자연의 거대함 속에 계시하고, 마음 가운데 있는 영혼에 계시한다. 이 세 가지가 합쳐져서 지존자에 대한 완벽한 계시를 이루는 것이다.」
19. 열린 환상
열린 환상 (p.419)
「나는 하느님을 의식의 거대한 바다라고 생각한다. 그 바다 안에서 파도들은 일어났다가 떨어지며, 물결들은 솟구쳤다가 부서지고, 다시 바다 전체에 하나가 된다. 새로운 물결들은 일어나며, 새로운 물결들은 다시 바다로 떨어져 하나가 된다. 하느님의 바다에서 하나의 물결과 같은 각 개인의 영혼은 바다에서 솟아올라 한 평생, 두 평생, 세 평생 동안 그 표면에서 역할을 하다가 다시 바다로 흡수되며, 그리하여 자유롭게 된다. 개개의 영혼들 사이에는 높고 낮음이 없다. 모두가 하느님의 다른 표상들인 것이다.」
제4부 멍에를 벗고서(1970∼1982)
「˝용기를 주시는 하느님, 당신의 종을 무(無)로 돌아가게 하소서. 그리하여 ´없음´을 뜻하는 그의 이름 비냐가 진정한 뜻을 얻게 하소서. 그의 소원하는 바들을 온전하게 이루어 주시며, 그 영혼이 하느님과 하나가 되게 하시고, 하느님안에서 지고의 기쁨 가운데 평안히 안식하게 하소서.˝ (p.422)
아방가-브라텐*」
20. 자유를 향하여 가는 길
죽음에 관한 생각들 (p.448∼454)
「내가 몸을 입고 태어난 지 칠십 년이 되던 해, 나는 내 정신이 더 이상 혼란스럽지 않고, 애를 쓰지 않아도 고요한 상태로 유지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누군가가 나에게 질문을 한다면 나는 대답을 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이다. 만일 내가 항상 이야기를 한다면, 다른 사람들은 스스로 생각하기를 멈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되는 것보다는 차라리 살아 있으면서도 ´죽어 있는´게 나을 것 같았다.」
「내가 그렇게 되기를 원하듯이, 누구나 사람은 자신의 눈으로 자신의 죽음을 보아야만 한다. 그래서 나는 내가 죽기 전에 ´죽어 있기´로 하고 부단 운동이 벌어지는 것을 보기만 하자고 생각하였다. 만일 누군가가 나에게 조언을 구한다면, 조언을 줄 수는 있다. 그것을 제외하고는 그 운동에서 구경꾼이 되기로 하자. 그래서 나는 친구들에게 항상 그 자리에 있는 한 권의 ´사전´에 불과한 사람으로 남겠다고 말했다. 사전이란 원하는 사람이 사용할 수 있도록 가만히 있는 존재이다. 만일 그들이 원하지 않는다면 책꽂이에 있으면 된다. 사전이 일어나서 돌아다니면서 단어들의 의미를 설명할 필요는 없다. 나는 그런 식으로 행동할 것이다.
동료들은 나에게 왜 그렇게 적게 먹고, 단식에 관한 이야기를 자주 하느냐고 물었다. 그 이유는 이러하다. 내가 『기타 이야기』에서 이야기했듯이, 정신을 죽은 상태로 유지하는 것이 좋은 일이기 때문이다. 나는 집을 떠나면서 어딘가 혼자 있을 수 있는 곳을 찾아가서 명상과 같은 것을 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간디 선생을 찾아가서 그와 함께 지냈고, 그의 지시에 따라 일했다. 이제(1978) 나의 유일한 목적은 죽음을 기다리는 것이다. 나는 내가 해야 할 모든 일을 다 했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제 나는 모든 외적인 행동으로부터 자유로워졌으며, 남아 있는 유일한 일은 사람들의 질문에 대답을 해주고, 그들에게 아이디어를 주고 설명해 주는 일뿐이다.
이제 나는 외적인 행동으로부터 자유롭기 때문에 죽음에 대해 성찰하고 있으며, 죽음을 통해서 죽음 없는 세계로 들어가는 것을 생각하고 있다. 나의 이런 입장은 『마누스므리티』에 한 문장으로 표현되어 있다.
˝종은 주인의 명령을 기다린다.˝
죽음에 대해서든 삶에 대해서든 아무런 욕망도 없다. 오로지 종처럼 내 주인의 명령을 기다릴 뿐이다. 나는 매일 잠자리에 들면서 죽는 연습을 한다. 나는 사람들에게 여러분이 죽을 때 해야 할 일을 오늘 하라, 즉시 하라고 말한다.
성자 투카라마는 이렇게 말한다.
˝내 죽음은 이미 죽었고, 나를 불멸의 존재로 만들었다. 나는 나의 죽음을 내 눈으로 보았다. 그것은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축제였다.˝
그래서 나는 매일 밤 죽음이 오기도 전에 죽음을 가지고 실험을 한다. 하느님에게 이렇게 말한다.
˝당신이 나를 오늘밤에 데려가신다 해도, 나는 어떤 일도 다하지 않은 채로 남겨놓지는 않을 것입니다. 나는 사랑이 가득하신 당신에게로 갈 것입니다. 만일 당신이 내일 나에게 다시 한 번 생명을 주신다면, 무슨 일이든 섬길 수 있는 일을 하겠습니다.˝
나는 매일 죽으며, 과거의 일은 모두 잊어버린다. 만일 간디 선생이 자신의 생애에 있었던 모든 일들을 다 기억하였더라면, 마지막 순간에 ´헤 라마´라고 말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죽음이 온다면, 그것은 나에게 오는 것이 아니라 나의 몸에 오는 것이다. 나의 진정한 자아는 불멸할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나에게 육신의 옷을 입혀주었던 모든 환상들을 포기하였기 때문이다.
누가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나는 그것을 좋은 소식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가 고향으로 돌아갔다는 게 어찌 기쁜 소식이 아니겠는가? 실제로 우리의 고향은 저 세상이다. 이 세상에서 우리는 나그네들이다. 내 차례가 다가오고 있다. 이제 며칠만 남았을 뿐. 나는 분명히 웃으면서 노래를 부르면서 가게 될 것이다. 『기타』가 이야기하듯이 웃고 장난을 치면서.
나는 몸을 입고 있는 동안 나 자신의 죽음이 ´놀이´하는 것을 즐거이 지켜보면서 그 이후에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 상상해 보고 있다. 나는 누구인가? 수많은 사람들, 모든 사람들은 죽음을 피하지 못하고 죽는다. 하느님과 우주만이 남을 뿐. 우리는 오고 또 간다. 바다의 물결처럼. 어떤 것은 작고 어떤 것은 크고, 어떤 것은 높고 어떤 것은 낮고, 그러나 모두가 물결일 뿐이다.
1981년 9월 11일, 나는 팔십육 년의 삶을 꼭 채웠다. 이 육신은 시간에 따라 왔다가 가는 물건이다. 결국 그것은 가고 말 것이다. 왜 인간이 그런 것에 집착해야 하는가? 너는 오늘 평안하게 잠잠하게 있거라. 오늘은 나의 생일이니. 나의 죽음의 날에도 평화와 고요함이 깃들게 하라. 나는 이제 더 할 일이 없다. 나는 노트에 이렇게 적었다.
˝나의 의무는 다 이루었다.˝
이제 나의 생명이 정해진 마지막에 이르기를 기다리면서 나는 그 시인의 충고를 따르려고 한다.
˝호흡을 할 때마다 라마의 이름을 받아들이라. 호흡을 낭비하지 말라.˝
나는 그렇게 하려고 노력하며, 항상 라마-하리의 이름을 기억하려고 애쓴다. 하루종일 내가 무슨 일을 하든, 식사를 하든 산책을 하든 그 노력은 계속된다. 밤에 잠자리에 누우면 그 일은 끊이지 않고 계속된다. 나는 하느님의 무릎에서 잠이 든다. 만일 하느님이 나의 의식을 가져가신다면, 나는 라마-하리의 이름을 외우면서 아주 복되게 죽어갈 것이다. 나는 그것을 의심치 않는다. 이런 생각들이 내 머리 속에 계속 맴돌고 있다.
라마다사 스와미는 말하기를 ´쉬리 라마´라는 거룩한 말은 누구에게나 개방되어 있다고 했다. 나 또한 모든 사람들에게 우리는 외부 공기를 들이마실 때 ´라마´라고 말해야 하며, 안에 있는 공기를 토할 때는 ´하리´라고 말해야 한다고 분명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신선한 바깥 공기와 함께 우리는 라마를 들이마시며, 우리의 안에 있는 공기를 라마로 가득 채운다. 그리고 안에 있는 공기를 밖으로 토해낼 때에는 제거하는 자이신 하리의 이름을 부름으로써 ´하란´, 즉 우리의 죄를 씻어내는 수행을 하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될 수 있는 한 자주 ´라마-하리´를 반복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들이쉬고 내쉬는 이러한 호흡의 리듬은 생명이 지속되는 한 계속된다. 그 단어들을 입으로 외울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의식이다.
성자 라마다사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한 사람은 죽고, 다른 사람은 애곡한다. 그리고 언젠가는 애곡을 하는 자도 떠나간다.˝
죽음은 모두에게 찾아오는 것. 한가지 유일한 문제는 그때가 다가올 때 하느님의 이름을 기억하는 것이다. 할 수 있을 때 평생토록 우리는 그것을 수행해야 한다.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한 가지 매우 중요한 일이 있다.
˝나는 잊으라. 그러나 『기타이』는 기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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