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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박한 사람들의 웃음 / 문현숙 |  | |
| 마을버스를 타려고 정류장에 서 있는데, 지나가던 빈 택시가 나를 발견하고는 내 앞에서 멈칫 하며 타라고 유혹한다. “열 번 찍어 안 넘어 가는 나무 없다”고 처음에는 안 타고 그냥 보냈지만 제2, 제3의 빈 택시가 자꾸 나타나고, 마을 버스는 오지 않고, 게다가 오늘은 필름을 출력하러 가는 길이라 이것저것 짐도 제법 있고 하다 보니 결국 나도 모르게 손을 흔들고 말았다. 택시 문을 열자 기사 아저씨의 반기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서 오세요.” 좀 지쳐 보이긴 하지만, 사람 좋아 보이는 아저씨의 반가운 인사에 “예, 안녕하세요. 청파동으로 가주세요”라고 기분 좋게 대답을 했다. “신촌 쪽으로 갈까요? 극동방송 쪽으로 갈까요?” “극동방송 쪽으로 가주세요. 졸업 철이라 신촌은 막힐 것 같은데요.” 이렇게 기사와 승객의 기본적인 주고받기로 시작된 우리의 대화는 이런저런 세상사는 이야기를 중심으로 거의 쉼 없이 목적지까지 이어졌다.
그는 새벽 4시에 나와서 오후 4시까지, 아니면 오후 4시에서 새벽 4시까지 12시간씩 2부제로 일을 한다. 3년 전에는 작은 중소기업에서 관리업무를 했는데, 아이엠에프 구제금융 이후 회사가 겨우 명맥만 유지할 정도로 힘들어져서 400%이던 보너스도 없어지고, 계속 눌러 있다가는 퇴직금도 못 챙길 것 같아 그만두었다. 몇 푼 안 되는 퇴직금으로 할 수 있는 마땅한 사업도 없고, 까딱 잘못하다가 그마저 날릴까 봐 택시를 하게 되었다. 다행히 택시기사 자격증을 따기가 생각보다 쉬웠고, 이직률이 높은 직업이라 그런지 취직도 금방 되어 벌써 택시 핸들을 잡은 지 2년이 지났다. 또 병나지 않고 한 달 꼬박 열심히 일하면 120만원 정도 수입은 된다고 했다. “아이들도 있을 텐데, 120만원으로 생활이 되느냐”고 묻자 “돈은 쓰기 나름”이라는 소박한 믿음을 이야기한 다음, “아이들이 부지런하고 공부도 잘 한다”며 슬그머니 자식자랑을 덧붙였다. 그리고 `푼돈 생겨 즐거운 날´ 이야기도 해주었다. 요즘은 합승이 거의 안 되지만 그래도 재수가 좋아 합승을 몇 건 하는 날이면, 집에서 받아 나온 하루 용돈 오천 원을 깨지 않고도, 담배 한 갑 사고, 밥도 좋아하는 도가니탕으로 먹을 수 있다며 환히 웃었다. 나는 평소에 합승을 부정적으로 생각했으나, 그의 말에 대해 어떤 반박도 할 수 없었다. 오히려 이 소박한 기사 아저씨에게 부디 합승하는 재수가 붙기를 마음속으로 바랐다.
지금 나라에서는 `월드컵의 성공적 개최´와 `16강 진출´이라는 거창한 구호를 내세우며 국민통합을 도모하고 있다. 하지만 진정한 국민통합이란 그런 거창한 구호로 실현되는 것이 아니라 이 기사 아저씨처럼 소박한 사람들의 입가에 미소가 사라지지 않을 때 가능해질 것이다.
한겨레신문 [흐린 뒤 맑음]
2002년 3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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