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앉아서 오줌누는 남자 / 강정구
[앉아서 오줌누는 남자] - 강정구 / 동국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한 번은 아내가 어떤 모임에 연사로 초빙되어 나에 대한 이야기로 청중들을 매료시킨 적이 있다. 가사 노동을 지금도 거의 70%를 자기가 아니라 남편이 하고 있고, 먼저 집에 오거나 일찍 일어난 사람이 당연히 저녁이나 아침을 준비하게 되어 있다는 이야기였다. 또 남편은 집안일을 도와준다는 개념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가사노동은 자기 일이고 동시에 아내의 일인 공동의 일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나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유형이래서 아내의 점심 도시락 준비를 거의 내가 하고, 또 애들은 이제 대학 졸업반이므로 더 이상 내가 돌볼 필요와 의향도 없고 당연히 자기들이 스스로 처리하게 되어 있다. 유학시절에 후배가 불쑥 우리 집을 방문하여 내가 파를 다듬고 있는 모습을 보고 난 후로는 전화만 걸면 “형, 지금은 배추 다듬고 있어요? 된장찌개 만들고 있어요?” 식의 농담을 던지기 일쑤다.

가사노동을 내 일로 여기게 된 것은 아내가 요구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다같이 직장에 다니며 시달리는 상황에서 가정생활을 제대로 끌고 나가기 위해서는 구조적으로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다는 지극히 현실적인 판단에 의해서였다.

또 일의 효율이나 능률상으로도 당연히 여유가 더 있거나 일찍 온 사람이 해야 할 것이다. 우선은 먼저 내가 배고픈 시간과 어린애들의 징징거리는 시간도 줄일 수 있다.

또 가사일을 쉽게, 빨리 또 조화롭게 처리할 수 있을 것이며, 더불어 아내가 직장일로 외부 활동을 하는데 가사노동 때문에 제약을 덜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합리적인 계산을 하더라도 가사노동을 여자에게 전담하는 것은 너무나 비생산적이고 비효율적이고 사회적으로도 손해나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판단이었다.

이런 합리적 차원에서 다른 사람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매력’ 아니면 ‘흉한 꼴’이 나에게 하나 있다. 많은 남자들이 이 이야기를 들으면 배꼽을 쥐거나 아니면 나를 “멍청한 놈, 남자 망신은 다 시키네”라고 욕할지 모른다. 그러나 여자분들은 분명히 매력적이라 할 것이다.

언젠가 한국의 한 신문에서 독일 어느 마을은 남자들이 앉아서 오줌을 누어야만 그 마을에 이사 올 자격을 취득할 수 있다는 ‘기이한’ 이야기를 소개한 적이 있다.

아마 한국 남성들은 엉뚱하게도 이것이 남자 체통의 문제이고 자유권의 침해라고 억지를 부리면서 펄펄 뛸지 모른다.

그 기사를 읽은 다음 날 강의 시간에 그 신문기사를 소개하면서 나는 오래 전부터 앉아서 오줌을 누어 왔기에 이제는 습관이 되었다고 했더니 학생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나는 앉아서 오줌을 누면 오줌이 주위에 튀지 않아 화장실이 더러워지지 않아서 좋고, 자기 발등에 튀기지 않아 위생적이래서 더욱 좋다고 했다.

이래서 우리 집에는 최소한 서서 오줌 누는 일 때문에 생기는 청소의 수고를 덜 수 있고, 이제 나이가 많으니 앉아서 오줌 누는 게 힘도 덜 들고 훨씬 편안하다.

이런데도 왜 남자 체통 문제라고, 또 관습이라고 버티는지 잘 납득이 가지 않는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 두 아들 녀석 중 큰 녀석은 아직도 매력적인 남자가 되기를 거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여성신문[여성컬럼] 663호
2002년 2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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