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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머니의 말씀 / 김애자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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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말씀] - 김애자 / 수필가
명절이면 섬처럼 멀리 떠나 있던 피붙이들이 한자리에 모인다.유배지처럼 적막하던 산촌 집집마다에 불빛이 환하고,아이들의 재잘거림과 혈기왕성한 젊은이들의 호쾌한 웃음소리가 마당 건너 대문 밖까지 흘러나온다.
올 세밑에는 근 10여 일간 황사까지 일면서 포근하여 봄나물이 일찍 선을 보였다.다북솔 언저리에서 캐온 달래를 송송 썰어 넣고,다진 마늘에 깨소금,고춧가루 골고루 섞어 만든 간장이 혀 밑에 군침을 돌게 한다.
게다가 맷돌에 콩을 갈아 만든 두부를 골패로 쳐 들기름에 노릇노릇 지져 한입 베어 물면 달래 향과 양념 맛이 기막히다.어디 이 뿐이랴.땅에 묻은 항아리에서 막 꺼내온 동치미에 말아먹는 메밀국수의 톡 쏘는 뒷맛은 어머니의 손끝에서만 나오는 별미다.
찬물내기 산촌에서 태어난 사람들에게 도시란 양어머니와 같다.고등학교 시절부터 대학 4년을 보내고 직장을 잡아 가솔을 이루며 산 세월이 적잖건만 도시는 양어머니 집에서 사는 것 같아 속내를 사리게 된다.
가끔 고액의 수표나 신용카드를 들고,신비한 나라,아라비아 궁전 같은 백화점으로 들어가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다 살 수 있고,온갖 먹거리가 판을 쳐도 고향집 늙으신 어머니의 손맛은 돈으로는 도저히 살 수도,구할 수도 없다.
그러므로 기른 정보다 핏줄이 당기는 생모에 대한 그리움이 더 간절하다.혈육의 이끌림을 막을 수 없듯 방패연을 들고 뒷산에 올라가 얼레를 돌리며 당사실 팽팽하게 당기며 바라다보던 아득한 하늘빛과,어머니가 길들인 고향의 입맛은 천륜과 잇닿아 정서의 진원을 이룬다.
아버지는 짐짓 자리를 피해 사랑채로 나앉으셨다.두레상머리에 둘러앉은 머리 큰 자식들이 서로 주거니받거니 소주잔이라도 돌리려면 아무래도 아버지가 자리를 떠주어야 편할 성싶어서다.그래도 안채에서 떠들썩하게 떠들고 있는 자식들과 그 새끼들이 쏟아내는 해맑은 웃음소리가 온 집안에 생기를 불어넣고 있어 여간 흐뭇한 게 아니다.
이런 심정은 어머니도 마찬가지다.열흘 전부터 명절 준비로 가는 허리가 시큰거려도 자식들 입에 들어가는 음식이 어찌 그리도 대견한지 모를 일이다.한쪽 구석에서 녹두전을 부치며 자분자분 지껄이는 며느리들 말소리도 듣기 좋고,첫돌 지난 손주가 졸음에 겨워 제 애비 품에서 투정을 부리다가 잠든 얼굴도 한없이 사랑스럽다.
밤이 깊어간다.새로 시친 베갯잇에서 풀내가 난다.바지랑대 높이 고이어 바람 쏘인 이불을 아랫목에 깔이 놓고 제기를 내다 마른 행주로 닦으며 어머니께서 일갈하신다.
“느그덜 우리 내외 죽으면,콘돈지 뭐시긴지 하는 곳으로 끌고 가 추도할 생각일랑 당최 말거라.조상님 모시기를 시름방귀 뀌듯 하는 것들은 썩은 산내끼로 목이라도 달아매야 내 직성이 풀린다.멧새는 깊은 수풀에서도 저 앉을 자리는 나뭇가지 하나면 되느니,알것냐”
국민일보 [여의도 에세이]
2002년 2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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