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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공하는 좋은글 입니다.
바쁜 일상 속에 잠시 쉬어가는 공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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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래된 집 / 이화련 |  | |
| 결혼한 후로 이사를 여러 번 했지만 지금 살고 있는 집만큼 첫 느낌이 좋았던 적은 없었다.증축했다지만 지은 지 20년이나 된 주택인데 왜 그런지 마음이 끌렸다.지붕도 담도 낮은 집,한눈에 들여다 보이는 조붓한 뜰에 마침 늦철쭉이 지고 있었다.이 집이다 싶었다.
첫눈에 반하니 집 안 구조도 어쩐지 낯설지 않고 벽지의 얼룩도 눈에 거슬리지 않았다.내 눈길이 얼룩에 머물자,비가 많이 오면 천장이 좀 젖는다며 주인이 눈치를 살폈지만 “손보면 되지요” 하고 받아 넘겼다.그러고는 이사 날짜에 쫓겨 전혀 손을 못보고 들어왔다.
이사하고 얼마 안 있어 장마철이 닥쳤는데 ‘비가 많이 오면 좀 젖는’ 게 아니라 날 궂은 시늉만 해도 물이 샜다.지붕의 기와를 한 장씩 들추어보다 결국 다 들어내고 새로 얹었지만 마찬가지였다.앞뒤로 내단 슬래브 쪽이 아무래도 미심쩍어 그 부분에 방수처리를 했더니 그제야 새는 것이 멈추었다.세찬 비바람에도 천장이 멀쩡한 것을 확인하는 순간,행복이 별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지붕에서 비가 새지 않는 것,느긋하게 빗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
그러나 곧 다른 문제가 생겼다.수도요금이 터무니없이 많이 나온다 싶더니,계량기가 무시로 돌고 있었다.누수 탐지기를 동원해도 새는 곳을 찾기 쉽지 않았다.마당부터 시작하여 서너 군데를 파헤친 끝에 화장실 욕조를 들어내고 말았다.그 아래 수도관이 깨져 있었다.
그 후로도 크고 작은 보수 공사가 끊이지 않았다.여닫을 때마다 금속성의 비명을 내지르다 끝내 반쯤 열린 채 움직일 줄 모르는 거실 창문을 끝으로,한 1년 잠잠하더니 요즘은 또 방바닥이 심상치않다.장판이 들뜨면서 방 가장자리를 뺑 돌아 검은 곰팡이가 올라온다.바닥을 다 뜯어야 한다는데 덩치 큰 가구를 움직일 일 때문에 아직 엄두를 못내고 있다.
사정을 아는 사람들은 집을 팔든지 차라리 다시 지으라고 한다.여간해서는 뒷소리를 안 하는 남편도,내가 너무 충동적이었다고 핀잔이다.집을 한 번 보고 사흘 만에 계약했으니 그런 말을 들어도 싸다.
하지만 나는 결혼도 남편감을 만난 지 석 달 만에 했다.무엇에 씌어도 단단히 씌었지 하는 생각이 전혀 없지는 않았지만 올겨울이면 결혼 22주년이 된다.느낌만 믿고 한 충동결혼(?)이 그럭저럭 살 만했듯이,첫눈에 끌린 이 집도 그런 대로 정이 들 것이다.파인 데는 메워주고 기울면 받쳐 가며 살 것이다.
깊은 밤에 문득 잠을 깰 때가 있다.깨어 보면 어딘가 편치 않다.팔이 저리거나 어깨가 시리다.나도 나이를 먹었구나 생각하며 돌아눕는 순간 뼛마디 어딘가가 우두둑 결린다.거기에 화답이라도 하듯 천장 혹은 벽 쪽에서 뚜둑 하는 소리가 들린다.젊지 않은 나를 감싸안은 젊지 않은 집!야위었지만 여전히 푸근한 노모의 품에 안긴듯 마음놓고 다시 잠을 청한다.
(이화련 / 수필가)
- 2001/11/27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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