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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만찬 / 염원정
영혼의 만찬 / 염원정


사당동 언덕 고개 중턱쯤에 자리잡은 제법 큰 한옥집 그 집 문간방을 전세내 자취를 하던 친구가 있었는데, 나는 종종 그 친구의 자취방에 초대되는 특권을 누리곤 했다.

그 친구가 자기의 자취방을 일년이 다 되도록 아무에게도 공개하지 않았기 때문에 몇몇 친구들은 그녀가 어쩌면 돈많은 사장의 첩살이를 할지도 모른다는 엉뚱한 상상도 하였다.

그러나 그 친구가 여전히 여유롭고 조용하게 흐르는 강물같이 흐트림이 없는 생활을 해나갔으므로
친구들의 엉뚱한 상상은 더 이상 빛을 보지 못하고 시들해져갔다.

그녀는 늘 친절했고, 예의 바르고 공손하게 친구들과 어느정도의 사이를 두고 있었는데, 가끔은 나와 조용한 찻집이나 교정 뜰에 앉아 조금 속을 들어내는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자신의 자취방으로 나를 끌어들이지는 않았고 나 또한 적당한 친구로 여기고 지냈다.

나는 그녀와 가끔 생맥주를 같이 마시기도 했는데, 주량이 형편없는 그녀는 500㏄ 한잔에도 취하는 주량인그녀가 어느날은 몇잔을 거푸 마시고는 취해 내가 묻지도 않는 자신의 집안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서울에서 이름난 기생이었는데, 그녀의 아버지가 자신의 어머니를 후처로 들여 그녀와 그녀의 남동생을 낳게한 경위를 눈물 콧물을 흘려가면서 하고 또하고 그러다가 또 울고 ....

그날 나는 그녀를 내 집에 데려와 같이 잤지만 그 다음날 그녀는 자신이 무슨말을 했는지조차 몰랐으므로 나도 모르는 척 지냈다.

그렇게 두 달이 지났을까?
내가 뜻하지도 않게 그녀의 자취방에 초대된것은?
가을과 겨울이 교차하며 낮과 밤의 기온차가 심했던 어느날이었다.

그때 내가 얼마나 설레였던지...
그녀에게서 특별한 대우를 받고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그 누구도 초대하기를 거부한 그녀의 방에 초대 되었다는 사실에 나는 저으기 흥분을 안할 수가 없었다.

오전 수업을 마친 그녀와 나는 미리 약속한 대로 그녀의 자취집으로 향했고, 나는 친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사당동 시장 근처 꽃집에서 보라색 국화꽃 한다발과, 제과점에서 롤 케�씐을 하나 사는 것으로 초대해준 것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그녀의 자취집에 들어서자 내 눈에는 우선 커다란 향나무가 하늘을 향해 점점 작고 동그랗게 솜방망이처럼 뭉쳐 멋지게 뻗어있는 모습이 들어왔으며, 벽돌 담 곁에는 잎이 다 떨어진 감나무가 노랗게
익은 감을 가지가 휘어지도록 달고서 금새라도 바람이 불면 감벼락을 퍼 부을 듯 풍성함으로 서 있었다.

잔디가 고르게 깔린 마당엔 대리석 디딤돌이 군대군대 놓여 주인의 깔끔하고 멋스러운 생활을 느끼게 해 주었고, 마당 한쪽 구석에는 운치있게 휘여진 등나무 밑에는 작고 앙증스런 나무 의자가 소품처럼 놓여있었다.

이런저런 모습을 눈에담고 있는사이 친구는 별실처럼 양옥으로 간단하게 지어진 방 앞으로 가서 들고있던 가방을 뒤져 작은 방울이 달린 열쇄를 찾아내더니 마법을 푸는 마법사 같이 자물쇠 구멍에 집어넣고 ´찰칵´하며 자물쇠의 잠금장치를 풀었다.

친구만이 열어볼 수는 방. 친구의 허락이 아니면 발도 못들여 놓는 방. 나는 그녀가 방문을 열기를 잠자코 기다리며 곧 보게될 그녀의 방안의 모습에 잔뜩 호기심을 집중시켰다.

방문 손잡이를 비틀어 문을 열고 나를 돌아다 보며 씨익 웃으며 드디어 그녀가 말했다.

´들어와!´

그 말은 마치 자기의 세계로 어서 들어오라는 소리처럼 내게는 감동적으로 들렸다.

커튼까지 드리우고 어둠속에 은밀히 숨어있던 방안의 모든 것들이 그녀가 열어젖힌 문으로 물밀듯이 들어차는 밝음에 차츰 모습이 드러나자, 나는 하나의 새로운 또 다른 세계를 들여다 보는 것처럼 신비롭기만 했다.

분홍색 지지미로 주름을 곱게 잡아만든 커튼. 앉은뱅이 나무 책상을 덮고있는 하얀 광목천에 수 놓인 꽃과 나비. 친구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그녀의 모든 소품들...
오직 그녀만을 위한 공간, 그녀만을 위한 것들로 가득찬 방에서 그녀는 나를 위해 그녀만을 위한 것들을 이용해 맛있는 저녁밥을 지어주고 그녀만이 간직하고 있고 알고있는 비밀스런 앨범이나 수집해 놓은 장신구를 보여주고 어느날 자신이 술에 취해서 들려주었던 이야기의 뒷부분까지도 자세히 들려주었다.

나는 그때 이후 그녀와 둘도 없는 사이로 서로의 영혼을 주고받는 사이가 되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그 당시 나는 그 누구도 눈치채지 못하게 사모하고 있는 김 선배가 있었는데, 나는 끝끝내 그 내색은 커녕 그 김선배를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처럼 그녀에게 이야기 하곤 했었다. 그런데, 세상에...
그녀는 그 김선배를 짝사랑 하고 있다고 내게 고백을 한 것이다.

나는 그녀앞에서 늘 김선배에 대해서는 내숭을 떨고 있었던 상태였기때문에, 나에게 먼저 고백을 한 그녀를 나무랄 입장도 아니였으며, 오히려 그녀의 안타까운 마음을 들어주고 다독거려줘야할 곤란한 입장에 놓이고야 말았던 것이다.

그녀는 그런저런 사소한 감정까지 내게 다 보여주며 어떻게 하면 선배에게 도움이 될수 있는 일을 할 수 있을까 하고 물었으며 보이지 않게 김선배를 위해 여러방면으로 도움을 주었다.나는 그런 그녀 곁에서 고통의나날을 보내며 어떤 결론에 도달해갔다.

첫째,
난 내 사랑에 패배할 수 밖에 없는 조건만을 잔뜩 지니고 있었다.(내숭이나 잘난척)
둘째,
나의 환경이 그녀보다 나으면 낳았지 못하지 않다는 점이 약점이었고,
셋째,
그녀가 겉보기에는 멀쩡하지만 자신의 뿌리에 대한 떳떳지 못해하는 마음의 깊은 상처를 내가 알고 있다는 것도 나에게는 큰 약점으며
넷째,
그녀가 솔직히 내게 풀어놓은 마음자락의 반도 나는 풀지 않고 내 사랑방을 숨기고 있었다는 것.
다섰째,
그녀가 김선배를 목숨처럼 사랑하며 원하고 있는 것에 반해, 나는 김선배를 내 목숨과 바꾸는 결심을 하지 못한다는 것.
여섯째,
나는 몹시 흔들려도 일어날 힘이 있지만, 그녀는어쩌면 영영 못 일어서고 주저앉아 인생을 망쳐버릴지도 모르는 여리디 여린 감성을 지녔다는 것을 내가 알고있다는 것이다.

나는 차츰 김선배에 대한 내 감정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내 스스로 백기를 들 수 밖에 없는 자세로 그녀의 솔직함 앞에 나는 초라하게 서 있었던 것이다.

내가 내숭을 떨며 그녀의 영혼의 방에 발을 들여놓고 그녀가 열어놓은 것의 반도 안되는 문을 열고 그녀와 마주앉았으니 어찌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있겠는가.

그 때문에 감수해야 했던 고통은 이루 말 할 수 없이 큰 것이었다.

결국,
나는 그녀를 위해, 아니 나를 위해 김선배 앞에서 예전과는 달리 냉정과 무관심으로 자꾸 거리를 두었으며, 그러한 내 행동에 상심한 선배는 차츰 그녀의 자상하고 친절한 배려속에 나름대로 마음을 옮겨가고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내 가슴은 갈갈이 찢겨져 처참하게아픔의 비명을 질러야 했지만,
나는 그녀의 행복을 진심으로 빌었으며 끝까지 그녀에게 내가 김선배에게 가졌던 남다른 감정을 숨겼다.

때문에,그녀는 아직도 내가 김선배를 시덥찮게 생각한다고 믿고있으며, 그것이 늘 나에 대한 유일하게 품는 불만이다.

그 후 그녀는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면서까지 김선배의 앞날의 디딤돌이 되어 주었으며, 둘이는 결혼하여 캐나다로 이민가 아들 둘을 낳아 잘 살고 있다.
그들이 멀리 있는 까닳에 다행스러운 점도 있지만, 난 지금도 김선배보다는 내 친구 ´그녀´가 너무너무 보고싶다.

예전처럼 그녀와 얼굴을 맞대고 만날순 없지만, 그녀가 그때 내게 떼어준 그녀의 특별한 마음이 깃든 영혼은 내 영혼을 감동시켰고, 그로 인해 나는 지금도 주저없이 그녀와 나누었던 영혼을 간직하고있다.

*~
그녀는 내게, 누군가에게 마음을 열어 보인다는 것은 하나의 새로운 영혼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깊은 철학을 내게 가르켜준 것이리라...

그리고 한번 생긴 믿음은 쉬 깨트리지 않고, 내가 그녀앞에서 떨었던 내숭까지도 곧이 곧대로 믿을 수 있는 믿음을 가지고 나를 대했기때문에 그녀는 자신의 행복을 손에 쥘 자격이 있다는 것을...

왠지 허무하고, 삶이 힘들어 질때, 외롭고 쓸쓸할때, 하는 일이 잘 되지 않고 늘 어긋날 때마다 나는 어딘가로 가서 영혼을 나눌 수 있는 사람과 만나고 싶다.

그때 그녀와 만났을 때처럼 부끄럽게 나를 조금 감추는것이 아니고 온 마음, 온 영혼, 온 정열, 온 정성을 다하여 만나고 싶다.

《거 누가 나를 초대해서 영혼의 만찬을 베풀어 주지 않겠소? 그 만찬이 비록 배추 김치에 된장찌개가 전부라도 좋고 그녀의 자취집에처럼 등나무 벤취에 앉아 새우깡을 아삭거리는게 전부일지라도,
그녀가 내게 베풀며 솔직했던 그 순간처럼 따스한 영혼의 만찬이라면 내 단숨에 달려가겠소. 거 누구 나를 영원의 만찬에 초대해 줄 사람 없소?》

아, 그녀가 지금 내게 이렇게 말하고 있다.
《´네 마음을 먼저 열어봐! 그러면 멋지고 신비스런 마법이 풀리면서 새로운 영혼의 세계로 초대될 것이야.´ 내 그리움에 초대하고픈 사람 내 아름다운 영혼의 세계에 초대하고 픈 사람 자물쇠를 열고 커튼드리워진 내 방에 초대하고 픈 사람 후후....마음을 열어봐!˝ 네가 초대될 테니.................˝》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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