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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향집 / 김정임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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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집 - 김정임 / 시인
외국 영화를 보면 그리 자유로워 보이던 아파트,아이들이 호텔이라 생각하며 원하던 아파트,서울에 와서 그 아파트에서 10여년을 살았다.
처음엔 전세로 살았는데 교통도 편리하고 산책로와 뒤로 보이는 비원 숲이 좋아 그대로 눌러앉았다.가깝게 지내는 사람들도 여남은이 되어 그런 대로 정을 붙여갔다.
그런데 서울 사람들은 이상하다.한 해에 몇 집씩 이사를 간다.평수를 늘려서,직장을 따라서,또는 전세를 놓고 한 집을 더 사서,그렇게들 떠나고 나니 이제야 아파트란 정 붙이고 사는 생의 터전이 아니라 쉬이 갈아입는 옷과 같은 곳이구나 싶고 좀 허허롭다.
가끔 정취 있는 나무 대문이나 고풍스러운 기와집을 보면 옛날 생각이 난다.어제는 산책길에 남의 집 뒤란에 매달린 홍시를 바라보다 왔더니 꿈을 꾸었다.산지기 박씨가 가져온 한 가마나 되는 감을 차곡차곡 쟁이는 꿈을.꾸고 나니 고향집에서 살던 일,지금도 떠나지 않고 거기서 살아갈 이웃들 생각에 잠이 오지 않았다.이제는 아득히 먼 이야기처럼 되돌아 갈 수 없는 그때가 그리워진다.
결혼식을 올리고 들어간 4월엔 비단모란이 흐드러지게 피었었다.이어서 철쭉과 장미가 피고,6월쯤 어린 감이 기왓장에 떨어지는 밤엔 잠을 설치기도 했는데.앵두가 익으면 뒷집 아이들이 담장을 넘기도 했고,여름이면 바위 사이에 석화가 초롱꽃을 피우고 대청마루에서 아이들은 좋아라 뛰고,도라지꽃이 무리지어 피었다 지고 이별란(蘭)이 소복으로 갈아입으면 날씨좋은 가을날 국화잎을 넣어 창호지를 붙였다.기와집 처마 밑에 감을 깎아 매달아 곶감을 만들고 나면 겨울이 오고,바람부는 추운 밤 광에서 강정과 식혜를 꺼내다 먹으며 그렇게 한 해 한 해가 바뀌었다.
아침이면 풍채 당당하게 출타하시던 자애로우신 아버님.오후면 일하는 아이를 딸려 시장에 가시던,물도 씻어드신다던 깔끔하고 멋쟁이셨던 시어머님.사랑도 많이 받고 배운 것도 많았던 시집살이였다.목욕탕은 앞마당 저쪽,장독대는 굴뚝 뒤,화장실은 창고 옆에 그런 것도 불편했는데 그것조차 지금은 아름다운 그림으로 남았다.
지금도 아이들은 고향집을 이야기한다.외국에 나가 살고 있는 아이는 그 집에서 찍은 사진을 보노라면 저절로 마음이 훈훈해진다고 한다.막내는 또 ‘가슴 속에 그런 추억의 집을 간직한 나는 참 행복해,엄마’라고 말한다.
집에도 혼이 있을까.그 집도 우리가 다시 가면 알아볼까.지금도 까르르 웃고 뛰놀던 우리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지는 않을까.
하기야 우리 영혼의 장막인 육신이 100년을 못 가는데,그보다 더 쉽게 사그라질 육신의 집에 이리 집착하는 것은 지나친 허욕일 게다.깊어가는 이 가을 내 영혼이 영원히 머물 고향집 그곳을 위해 기도할 일이다.
(김정임 / 시인)
-2001/11/6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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