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좋은글 나누기
joungul.co.kr 에서 제공하는 좋은글 입니다.
바쁜 일상 속에 잠시 쉬어가는 공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月山식당 할머니 / 김정임


月山식당 할머니 - 김정임 / 시인


고향은 추억 속에서 더 아름다워진다.척박하던 자갈밭도,배고프던 가난도 세월이 갈수록 그리워지니 말이다.입지전적인 인물 이야기가 나오면 내 이야기인듯 행복해지고.

이모 변호사님이 계셨다.어릴 적부터 은행 사환을 하며 끼니 걱정을 하던 그분은 어느 날 도깨비처럼 고시에 합격했다.“새벽에 누가 뒷간에서 거름을 퍼내길래 야단을 쳤더니만 ‘미안허유,읍내서는 거름을 안 쓰는 줄 알었슈’ 하며 뒤돌아서는디 아,거름통을 멘 이변호사 아녀.내가 다 민망혀서 ‘어서 퍼가슈’ 했네 그려”하시는 어른들 말씀은 그분을 성실함과 성공의 모델로 삼기에 충분했다.국회의원에 출마한 그분에게 어른들은 표를 몰아주었고 차관까지 되셨을 땐 고향을 위해 큰 일을 하실 거라고 기대했다.

또 한분,병원 김모 원장님.그분은 범접할 수 없는 고상함의 표본이었다.열녀상을 타신 할머니의 자손으로 집안 친척이었던 김원장님은 내가 아저씨라고 부른다는 사실조차 영광스러웠다.서울에서 공부하다 방학 때 내려오는 언니들은 선녀 같았고,아버지와 두시던 조개 껍데기로 된 바둑알조차 신비하고 아름다운 보물 같았다.갈수록 환자가 많아지고 돈을 번 김원장님은 도시에 빌딩을 짓고 병원을 옮기셨다.조금 멀어도 고향 사람들은 버스를 타고서라도 그 병원을 찾아다녔다.“아,미국 사람들이나 타는 멋진 자가용도 사셨던디 돈을 더 벌면 장학회도 만드신댜”라고 다녀오신 어른들은 자랑스레 말씀하셨다.

권력과 재물이란 사람을 타락시키는 것인가.지위가 높아질수록 돈을 많이 벌수록 발뒤꿈치를 땅에 붙이고 초심을 상기하지 않으면 풍진 세상의 바람에 휩쓸리기 쉬운가 보다.이변호사님은 이권에 개입해 우리의 자랑을 무색케 했고,김원장님은 첩실을 두어 재산 싸움에 휘말렸다는 소문으로 우리를 부끄럽게 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그 두분을 생각하다 보면 으레 떠오르는 다른 한분이 계시다.월산식당 할머니.가끔 엄마 손을 잡고 저녁 늦게 시장에 가면 주로 나뭇전 주변에서 뵐 수 있었던 머리 허연 할머니.엄마가 그러셨다.솔걸 한 짐을 지고 30리 길을 걸어온 시골 남정네,또는 산나물 한 소쿠리를 이고 20리 길을 다시 걸어가야 할 아낙에겐 하나님 같은 분이라고.날은 저물어 어둑어둑해지는데 팔리지는 않고 집에서 기다릴 어린것들 생각에 애가 탈 때 할머니가 나오셔서 다 팔아주신다고.그리고 가끔은 따끈한 국밥도 한 그릇씩 말아 주시는데 따라온 어린것에게는 살코기도 두어 점 더 얹어주신다고 말이다.또 음력 설 땐 보육원생들에게 장갑도 한 켤레씩 챙겨주시고,큰 가마솥에 떡국을 가득 끓여 먹고 싶은 만큼 주신다고도 했다.그분이 돌아가셨을 땐 온 시장 사람들이 다 상여 뒤를 따랐다고 한다.심지어는 바보 호식이도 뒤따르며 ‘함무이,함무이’하고 울었단다.

이렇게 날씨가 추워지는 계절이 오면 김원장님도 이변호사도 아닌 월산식당 할머니가 가끔은 그리워진다.

(김정임 / 시인)

- 2001/12/3 국민일보

 
비즈폼
Copyright (c) 2000-2025 by bizforms.co.kr All rights reserved.
고객센터 1588-8443. 오전9:30~12:30, 오후13:30~17:30 전화상담예약 원격지원요청
전화전 클릭
클린사이트 선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