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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를 무장해제시키는 눈물 / 박미라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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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를 무장해제시키는 눈물 ]
여자의 어깨에 기대 우는 남자, 여자와 싸우다 우는 남자면 어떤가
사내대장부는 일생에 세번 운다고 했던가? 태어날 때,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그리고 임금이 죽었을 때.
태어날 때 우는 생리적인 울음을 빼면 나머지 두 가지의 경우는 조선시대 최고의 가치였던 효(孝)와 충(忠)의 눈물이다. 이런이런, 이렇게 재미없는 눈물을 흘리고 죽어야 하다니, 남자의 인생도 불쌍하거니와 그토록 눈에 힘주는 남성다움에 대한 심한 허세도 민망하다. 얼마나 허약했으면 그토록 눈물을 절제했단 말인가. 평생, 그것도 수시로 우는 여자들이 더 강인하고, 더 오래 살건만…. 게다가 ‘남자의 눈물’이 흔치 않다는 점을 이용해 국민으로부터 면죄부를 받으려는 권력자들을 몇번 보고나니 농도짙은 남자의 눈물이 더욱 싫어졌다.
여자의 마음이 따뜻해진다
남자들이여, 충혈된 눈에 힘을 빼고, 더 많이 울어도 좋다. 진실된 마음을 드러내는 진정한 눈물이라면 남자가 흘려도 아름답기 때문이다. 내가 꿈꾸는, 남자의 눈물이 있는 아름다운 풍경은 이렇다.
첫째, 함께 슬퍼하는 남자.
해질 무렵 남녀가 카페 창가에 앉아 있다. 여자가 인생의 어떤 고통 때문에 운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남자가 말없이 따라 운다. 여자는 자신의 슬픔을 공감하는 남자의 눈물이 감격스럽다. “까짓 거 별거 아닌 거 갖고 왜 울어” 또는 “괜찮아, 내가 있잖아. 내가 지켜줄게” 하는 백 마디 말보다 그 눈물이 힘이 된다는 건 여자라면 모두 인정할 것이다. “그래, 네가 있어 나는 눈물을 거둔다.”
둘째, 여자의 어깨에 기대 우는 남자.
인생의 어떤 고비를 넘고 있는 남자가 여자의 어깨에 기대 눈물을 흘린다. 그 흐른 눈물로 여자의 어깨가 젖어도 좋다. 남자라고 왜 인생이 절망스럽거나 힘겹지 않겠는가? 그럴 때 왜 눈물 흘리고 싶지 않겠는가? 그런 자신을 인정하고 눈물 흘리는 남자는 아름답다. “그래, 내게 기대. 내가 너의 힘이 되어줄게.”
셋째, 휴머니티가 있는 남자.
모처럼의 한가한 주말, 텔레비전의 휴먼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혹은 슬픈 드라마를 보면서 남자가 운다. 그러다가 울고 있던 아이들이나 아내와 눈이 마주쳐 멋쩍은 웃음을 흘린다. ‘당신도 나처럼 마음이 따뜻해졌구나.’ 일상의 잔잔한 슬픔에 눈물 흘릴 수 있는, 휴머니티가 있는 남자는 아름답고도 믿음직스럽다.
넷째, 우는 여자 앞에서 당황하지 않는 남자.
남자상사에게 호되게 문책을 받은 직장여성이 그 상사 앞에서 울고 있다. 울지 않으려고 애써도 이미 터진 눈물보를 주체하기 어려울 때 이런 생각이 든다. 제발, 나의 우는 모습을 지켜보는 저 남자도 남들 앞에서 울어본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담담하게 “이제 다 울었니? 그럼 이제 네 자리로 돌아가서 다시 일을 시작해 봐”라고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충성’을 맹세해도 좋다.
“여자들은 툭하면 울어. 난 정말 여자부하들이 울면 너무 당황스러워”라고 떠들어대는 남자상사는 여자 부하를 당황스럽게 한다. 맥없이 흐르는 눈물이 때로는 쓸데없는 자격지심을 무장해제시키고, 겸손한 마음으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게 해준다는 사실을 모르는 남자와는 일하기 싫다.
남자에게 눈물을 권한다
다섯째, 여자와 싸우다 우는 남자.
여자와 남자가 심각한 격론을 벌인다. 여자가 조목조목 남자의 문제점을 짚어가면서 남자의 말문을 막을 때 남자가 뒤돌아나간다. 따라나간 여자가 혼자 울고 있는 남자를 발견하곤 곧바로 후회한다. ‘그래, 내가 너무 심했다. 조금 더 상대를 배려해서 얘기했어야 하는데….’
“네가 뭔데 나한테….” “어쭈, 남자한테 그게 할 짓이야?” “무슨 여자가 이렇게 대가 세?” 이렇게 어깨에 잔뜩 힘을 줬다면 아마 여자는 남자를 영원히 이해하지 못했을 거다.
그리하여 나는 눈물을 흘려본 여자로서 자신있게 남자들에게 눈물을 권한다. “눈물을 흘려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은 매력적이고 또 스스로 행복하다”고.
박미라/ 페미니스트 저널 <이프> 부사장
2001년11월14일(제384호)
한겨레 21(제 384호) [커버스토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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