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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복을 깁는다 <반인자>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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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깁는다 <반인자>
˝어마, 반바지 만들어 입어도 되겠죠?˝
아들이 반바지 입고 내 앞에 우뚝 서 있다. 대학생이 된 막내아들이 요즘도 키가 크나보다. 바지 길이가 발목에서 복숭아 뼈 위로 대추씨만큼 올라와 있다. 허리 치수랑 엉덩이도 맞고 아직은 성해서 반바지 만들면 안성맞춤 일 것 같다. 아들의 주문에 바지를 무릎 아래쯤에서 가위로 자르고 재봉틀을 꺼냈다. 웬일인지 발대가 움직이지 않는다. 나와 같이 시집와서 생활하며 요긴하게 썼기에 아꼈던 물건이다. 재봉틀을 만든 미국의 엘리아스 하우는 가난한 기계공이었다. 늦은 밤까지 삯바느질을 하는 아내가 너무 안쓰러워 재봉틀 제작에 나섰다. 하지만 5년 동안 실패를 거듭했다.
어느날 꿈속에서 토인이 가지고 있던 구멍 뚫린 창에 힌트를 얻었다. 귀가 끝에 있는 바늘을 단 재봉틀을 만드는 데 기어코 성공했다. 아내를 사랑한 남편의 집념이 꿈속에서까지 자라서 여물더니 세계 모든 여인들의 가사 노동을 덜어주었다. 인도의 마하트마 간디는 ˝인류의 발명품 중 몇 안 되는 유용한 물품˝이라고 재봉틀을 칭찬했고, 미국의 유명한 여성지 레이디스 북의 발행인은 ˝쟁기 다음으로 가장 축복 받은 도구˝라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이백여 개의 부품으로 이루어지고 일백분의 일 밀리미터 오차라도 바느질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이렇게 정밀한 재봉틀이 발전을 거듭하여 오늘날에는 단추 하나만 눌러도 가능한 컴퓨터형 재봉틀까지 나와 있다.
눈이 아프도록 들여다보며 한 땀 한 땀 고운 명주실로 자수를 놓는 느린 손 수에 비하면 정감이 덜하긴 해도 재봉틀은 한꺼번에 많은 양과 무늬를 만들어 낸다. 여인들이 쓰는 물건 이어서 인지 부속품들은 반달, 노루, 북, 발, 들대라는 예쁜 이름들을 가졌다. 하지만 지금은 공장에서 남자들의 투박한 손에서도 쉬임없이 돌아간다. 내 어줍잖은 기술로는 작동이 안되어 실 강이 하다 밀쳐 놓았다. 아들이 저녁에 바지를 들먹인다. 내일까지 숙제로 남겨 놓으며 부탁을 거듭한다. 이튼날도 여전히 재봉틀은 단단히 토라 졌는지 꼼작도 않는다.
혹시 아래 집에 틀이 있나 싶어 가위질한 바지를 가지고 내려갔다. 염치없이 몇 집을 두드렸지만 약속이나 했는지 한집도 없다. 세탁소에 가지고 가면 일 이천 원이면 꿰매 준다고 친절히 알려준다. 얼마 전 까지만 해도 결혼할 때 혼수 품목으로는 단연 일 순위 였다. 이런 필수 품목이 이제는 슬그머니 밀려나 자취를 감추다니 애석한 일이다. 여자 의 가치를 바느질 솜씨로 잣대질 할 정도였다. 이제 여성들의 능력도 전문직에서부터 다양하다.
어머니는 비오는 날이면 재봉 일을 하셨다. 날씨가 좋으면 밭으로 논으로 나가시기에 바빳다. 비오는 날 재봉 일하시는 어머니 옆에서 안달을 내기에 초등학교 저학년때 재봉틀을 처음 만져 봤다. 바닥에 천을 깔고 돌리는데 중심을 잃고 뒤로만 박아지면서 실이 자꾸 끊겼다. 옆에서 지켜보시던 어머니는 윗실과 밑실을 잘 조절하고 바늘과 실과 천의 조화가 잘 맞아야 박음질이 된다고 일러 주셨다. 옷감만 있으면 어머니 손에는 요술처럼 명절이면 다홍치마, 색동저고리, 심지어 벽걸이, 부엌에서 쓰는 수저통까지 만들어 지는게 신기했다.
주부의 정성이 배어 있는 각종 소품으로 아기자기하게 꾸민 알뜰한 가정을 보면 행복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동화 나라에 들어온 기분이다. 때로는 예술 감각이 돋보여 한편 부럽기도 했다, 생활하다 보면 개구쟁이 아이들 장난하다 옷이 찢어지고 타지기도 했다. 버리려는 헝겊을 바둑판처럼 예쁘게 잘라 조각 방석이나 편지꽂이를 만들어 아이들로 하여금 즐거운 상상을 하게 했다. 이런 중요한 생활용품이 여인의 손끝에서 푸대접으로 괄시를 받고 밀려나고 있다. 결혼하고 여태껏 한번도 수선하는 사람의 손을 거치지 않고 요긴하게 잘썻다. 사람도 오래 살다 보면 자연히 질병이 생긴다.
재봉틀보다 오래 쓰다보니 고장이 날수도 있겠지. 가벼운 몸살이라도 앓고 있는 모양이다. 시집살이를 같이 하면서 고락을 나눈 다정한 친구라 생각하니 중병이 아니길 바라나. 내일은 재봉틀 고치는 분을 불러다가 사랑을 흠뻑 주련다. 아픈 곳을 찾아 정성껏 치유해주고 기계한테는 혈액과도 같은 기름도 골고루 칠해 주련다. 사람을 이렇게 오랫동안 대가 없이 부려먹었으면 얼마나 짜증을 부리고 투정했을까.
세상이 아무리 시끌벅적 어지러워도 사회의 이곳 저곳 구석에서 이재에 밝지 않고 자기 분야에서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기에 세상은 힘차게 굴러가는 것이다. 이들이 내 재봉틀 같은 묵직한 성품을 지닌 분이 아니겠나 여겨진다. 땀수가 뛰지 않게 일정하게 박아야 바느질 솜씨가 있다. 내 생활도 뜀박질하지 않고 일정하게 가지런한 생활이 이어졌으면 한다. 요즘 같으면 고무신 거꾸러 신고 뛰어 갈일이 없으면 그날은 좋은 하루이었다고 감사 드린다. 찢어진 옷도 짜깁기하면 흠잡을 데 없이 새 옷이 되고, 쓸모 없는 자투리 헝겊도 조각 무늬로 예쁘게 꿰매면 아름다운 작품이 창작된다. 내 삶에서 희미하게 잊혀진 추억들을 꺼내 보자. 지난날 애잔한 일상들을 재봉틀에 앉아 상처난 흠집들을 행복으로 재단해서 곱게 기워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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