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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병종 新화첩기행] 남도의 정한...섬진강에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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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종 新화첩기행] 남도의 정한...섬진강에서<2>
산골색시 같은 저 강은 속삭이네, 서둘지 말라고...
김용택 시인이 은어 같은 언어를 퍼올리는 곳
그대여 나는 지금 저문 섬진강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산길을 돌아서자 거기 강이 있었습니다. 강은 사행을 그리며 지금 막 노을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섬진강 시인’이라고 부르는 시인은 여우치 둔덕 위의 분교 앞마당에 서 있었습니다. 그가 선 앞으로 꽃잎이 분분히 날렸습니다. 밭일을 하다가 허리를 펴고 일어선 농부의 모습으로 시인은 두터운 손을 내밀어 나를 맞았습니다. 시인은 논농사 밭농사 지어 철철이 도회의 아우에게 올려보내 주는 고향의 장형처럼 그간 마암 분교와 섬진강 주변에서 지은 글 농사로 책을 묶어낼 때마다 내게 보내주곤 했습니다. 그가 보내주는 책의 겉 표지를 열면 늘 짤막한 계절 이야기나 화사한 꽃 소식 같은 것이 적혀 있곤 했습니다. 서울 살이가 팍팍할 때마다 나는 그런 김 시인과 함께 바람 불고 꽃피는 마암 분교와 강변 마을을 그림처럼 떠올리곤 했습니다. 섬진강 주변을 그토록 그리운 장소로 만들어버린 것은 김 시인의 시가 있어서일 것입니다.
우리는 강을 따라 함께 걸었습니다. 남도 오 백 리의 들판을 적셨다가는 산자락으로 숨어버리고, 마을을 데불고 나타났다가는 솔밭 속으로 다시 숨어 버리기를 거듭하는 강을 시인은 ‘산골 색시’같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내게는 애잔한 느낌으로 먼저 다가옵니다. 섬진강은 참 이쁘면서도 애잔한 강입니다. 남도 한 실은 남도 창의 구비 구비만큼이나, 흐르는 것 같지 않게 조용한 물살로 흐르고 있지만 많은 사연을 간직하고 있는 강입니다. 그 강은 서둘지 말라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속도에 중독된 그대의 삶을 이제 그만 내려놓으라고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고 보면 여러 개의 도와 군을 거쳐 흐르건만 이 강은 결코 급한 성깔을 드러내는 법이 없습니다. 그저 흐르는 것 같지 않게, 그러나 결코 쉬는 법 없이 흘러갈 뿐입니다. 섬진강 따라 걸으며 나는 우리 삶의 여유와 속도가 저 강 같을 수만 있다면 하고 생각하였습니다.
“속도 말인데요.”
서울에서 온 나는 이 현기증 나는 문명의 속도를 말했지만 시인은 강물의 흐름으로 받아들인 듯 했습니다.
“많이 늙어버렸어요. 강이 수척해요. 물살의 빠르기가 예전 같지 않고. 수기도 잘 전해지지 않아요….”
강이 수척하다, 섬진강 지킴이답게 시인은 강의 안부를 소상히 들려주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자신이 문학으로 섬진강을 너무 많이 퍼내었노라고 너털웃음을 웃었습니다. 그러나 나같이 메마른 도회에 사는 사람은 시인이 강 주변의 삶과 풍경들을 정겹게 바라보고 살갑게 기록하여 보내주는 글을 통해, 배달되어 온 샘물로 목을 축이듯 그렇게 목을 축이는 것입니다.
그는 따뜻하고 아름다웠던 유년의 날들에 대해서도 이야기 해 주었습니다. 이제는 사라져 버린 그 추억의 곳간을 뒤지며 시인의 입에서는 그리움, 외로움, 기다림 같은 말들이 나옵니다. 이미 서울에서의 내 일상 속에서는 죽어서 비늘처럼 떨어져 나가버린 말들입니다. 그리움이라니…. 그 말을 써 본 지가 얼마나 오래되었던가요. 시인이 지금껏 그런 말들을 지키고 있었던 것도 어쩌면 저 강이 있어서였을 것입니다. 그의 시가 나 같은 도시인에게 배를 쓸어주는 할머니의 손길 같은 부드러움으로 다가오는 것도, 황소울음 같은 두터운 힘이 느껴지는 것도 모두 저 강이 있어서일 것입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내게는 강이 없었습니다. 문 열면 회색 아파트가 시야를 막아설 뿐입니다. 회색 공간에 갇혀 상상력도 서서히 죽어갔습니다. 책상에 만년필을 찧고 싶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저 섬진강에 나가 황혼과 새벽에 은어 같은 언어를 쉬임 없이 건져 올렸을 시인이 나는 부러웠습니다.
일몰의 강은 차츰 신비함으로 가득합니다. 강을 따라 걷는 우리까지 숫제 그 신비한 빛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형국입니다. 거기에는 태고의 빛이 있었습니다. 따스한 모성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강을 조석으로 거닐 수 있는 시인이 부럽다고 했을 때 시인이 말했습니다. 현실의 강만이 강은 아니라고, 강이 가슴속으로 흘러들게만 하면 누구라도 강을 가진 것이라고, 이제라도 우리 모두는 가슴마다 흐르는 강을 가져야 할 것이라고.
일몰에 섞여 산그늘은 수묵처럼 번져옵니다. 참으로 오랜만에 가져보는 고요입니다. 멀리 논둑길을 아이들 몇이 석양 속으로 뛰어가는 것이 보입니다. 문득 ‘싯달타’라는 책에 나오는 뱃사공 바스데바가 떠오릅니다. 구도의 길을 나선 청년 싯달타를 건네주었던 바스데바는 땅의 이곳 저곳을 다니다 오랜 세월 뒤 돌아오는 싯달타를 다시 건네주며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오직 이 강물에서 배웁니다. 강물은 나의 스승입니다.”
지금쯤 붐비는 지하철이나 자동차에서 내려 터벅터벅 회색 도회의 숲을 지나 귀가하고 있을 그대여. 오늘 나도 바스데바처럼 저문 섬진강에서 배웁니다. 지금 내가 바라보고 있는 저 일몰의 강을 이 저녁 당신에게도 선물로 드리고 싶습니다. 오늘 강은 나의, 아니 우리들의 어머니이고 스승입니다. (한국화가·서울대 미대 교수)
▶섬진강 시인 김용택
사람들이 ‘섬진강 시인’이라고 부르는 김용택은 1948년에 출생하여 1982년 ‘창작과 비평’에 ‘섬진강’ 연작을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하였다. 고향인 전북 임실을 떠나지 않으며 질박하면서도 맑고 따뜻한 서정으로 섬진강 일대의 이야기를 일곱 권의 시집과 여러 권의 동시 산문집 등으로 엮어내었다. 김수영 문학상(1986), 소설시 문학상(1997)을 수상하였고 현재 임실의 마암 분교 교사로 재직하고 있다.
* 자료출처 : 디지털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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