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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흔들면 되는 거여
그냥 흔들면 되는 거여

마흔이 된 아버지가 아내와 아들 앞에서 혼이 납니다.
“이놈아, 넌 어찌 하는 일이 그러냐? 나이를 헛먹었구나, 헛먹었어! 당장 가서 물러 와!”
할아버지의 불호령에도 아버지는 한마디 대꾸도 못하시고 고개를 떨구고 계십니다.

“아이고, 철연 아부지, 아버님 성격 모르요? 어쩌자고 쌀 한 가마니를 주고 시계를 샀댜.”

우리 형제는 꽉 채운 열입니다. 아홉째인 제가 어머니로부터 들은 몇십 년 전 이야기지요. 할아버지는 남의 집 잡일까지 도맡아 하면서 악착같이 사신 덕에 면에서 유명한 부자가 되셨답니다.
‘아랫드랭이 대문집’ 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었지요. 그렇게 땀 흘려 번 돈이기에 할아버지는 한 번도 돈을 허투로 쓰신 적이 없으셨습니다. 그런데 외아들을 너무 귀하게 키우신 탓인지 아버지는 세상 물정을 잘 모르셨습니다. 장날에도 집안 농사일을 거들 뿐 십 원 한 장 마음대로 쓴 적도 없으셨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할아버지가 가난한 친척에게 논을 몇 마지기 사 드렸습니다.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에 친척집에서는 1년에 쌀 한 가마니로 고마움을 대신했지요. 1년이 되어 아버지가 삯을 받으러 가셨는데, 돌아오신 아버지는 쌀가마니를 짊어지신 대신 알이 굵은 새 손목시계를 차고 계셨습니다. 손목에 차면 무거워서 아플 정도로 크고 두꺼운 그 시계가 당시엔 정말 귀한 시계였나 봅니다. 아버지는 늘 자랑스러운 듯 말씀하셨죠.

“이건 시계밥 안 줘도 되는 거여. 기냥 흔들면 되는 것인게 잉.”
지난 해 겨울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어머니는 아버지의 유품을 정리하다 이 시계를 보시곤 눈물을 훔치셨습니다.
“느그 아부지가 태어나 처음으로 쓴 돈으로 산 거다. 그 뒤에도 느그 아부지는 돈이 뭔지도 몰랐응께.”

엄마는 언니도 오빠도 아닌 내게 시계를 쥐어 주셨습니다. 어제도 흔들어 놓았는데 바늘이 그새 멈춰 버렸네요. 아무리 봐도 예쁜 구석 하나 없는 시계가 나를 잠 못 들게 합니다. 흔들면 째그락거리며 태엽이 감깁니다. 어디선가 아버지의 그리운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습니다.
“고장나긋다. 쪼매만 흔들어도 되는디….”

김자연 님 / 경기도 의정부시 호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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