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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혼의 찢어진 바지 |  | |
| 황혼의 찢어진 바지
얼마 전 남편과 함께 시댁 가까이 있는 주유소에 들렀다. 1리터 당 1260원이면 우리 동네보다 기름 값이 싸다며 남편은 망설임 없이 핸들을 꺾었다.
저 멀리서 청바지를 입고 모자를 쓴 호리호리한 청년 한 명이 우리 차 쪽으로 재빨리 뛰어오며 “어서 오세요! 얼마나 넣어드릴까요?”하고 말을 건넸다. 남편이 “가득이요.”라고 주문하는 동안 나는 무심히 앞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저만큼 떨어진 곳에서 모자 아래로 흰머리가 보이는 할아버지 한 분이 다른 차에 주유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혹시나 해서 남편 쪽 창문을 쳐다보니 “사인 부탁합니다” 하고 정중히 펜을 내미는 주유원 역시 백발이 성성한 할아버지였다.
깍듯하게 손님을 대하는 태도가 어느 젊은이들 못지않게 씩씩하고 활기차 보였다. 남편이 사인을 마치자 “좋은 하루 되십시오!”하고 외치고는 다른 차로 힘차게 뛰어가셨다. 헐렁한 셔츠에 왼쪽 무릎이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모자를 눌러쓴 할아버지 뒷모습은 영락없는 20대 청년의 모습이었다. “저 할아버지 바지 좀 봐요. 일부러 찢으셨을까?” 그러자 남편 대답이 더 압권이었다. “뛰시다가 넘어져서 저렇게 되신 거겠지.”
어쨌든 나에겐 정말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 연세의 할아버지들은 흔히 집에서 소일하거나 손주를 돌봐 주시는 게 고작이니 말이다. 갖가지 색깔로 머리를 염색하고 통 큰 바지에 소 꼬랑지 마냥 허리띠를 늘어뜨린 10대 청소년들의 일터였던 주유소에 연세 지긋한 할아버지들을 고용하신 주유소 사장님의 지혜가 놀라웠다.
그 감동이 사라지기도 전에 500미터쯤 갔을까? 사이클을 타고 지나는 남자 한 명이 눈에 띄었다. 구릿빛으로 검게 그을린 종아리며 빛나는 푸른색 헬멧, 까만 유니폼을 입고 선글라스를 쓴 채 열심히 폐달을 밟는 그 사람은 젊은이가 아닌 얼굴에 검버섯이 핀 노인이었다.
우연치고도 참 신기한 두 광경을 보고 남편에게 말했다. “우리도 저렇게 건강하게 늙어 가자. 참 보기 좋네.” 마음이 여유롭다면 나이 든다는 것이 슬프고 허무하다기보다 새로운 자신을 발견하고 가꾸어 나갈 수 있는 풍요로운 시기가 될 것이다.
이인숙 님 /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야탑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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