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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를 담그며
김치를 담그며



“엄마, 이게 다 뭐야?”
초등학교 2학년인 아들녀석이 거실에 절여 놓은 배추를 들여다보며 신기해한다. 결혼 생활 9년 차가 되도록 변변한 김치 한 번 안 담가 본 건 때 되면 직접 담근 김치를 보내 주신 친정 엄마 덕이다. 김치가 동날 때쯤 되면 택배로 척척 보내 주시던 엄마가 요즘은 건강이 안 좋으시다. 예전보다 병원 출입이 잦아지셨고 약 드시는 날도 많아지셨다.


그래서 우리집은 보름 전부터 슈퍼에서 파는 김치를 먹고 있다. 김치 하나만 가지고도 밥 한 그릇 뚝딱 해치우는 우리집 남자들 젓가락이 허공에서 멈칫멈칫한다. 사 먹는 김치가 영 입맛에 안 맞는 눈치다.


보름동안 식탁 분위기를 지켜보며 고민하다 드디어 배추 두 통을 사들고 집에 돌아와 역사적인 김치를 담그는 날. 온갖 양념병을 즐비하게 늘어놓고 요리책까지 뒤적여 가며 우여곡절 끝에 완성한 김치를 자랑스럽게 식탁에 내놓았다.


모양 좋고 빛깔 좋고 대 성공이라 생각했으나 순전히 나만의 착각이었다. 남편은 몇 번이고 맛을 보더니 먹을 때마다 맛이 다른 요술 김치란다. 내가 서운해할 까봐 마음은 쓰였는지 “잘 익으면 먹을 만 하겠네.” 한다. 양념맛이 잘 배어들지 않았는지 아들 녀석은 고춧가루를 부어 먹으며 “김치는 역시 우리 할머니 손맛이 제일인데….” 하고 아쉬워한다.


이렇게 나의 첫 김치는 맛은 없고 열정만 넘치는 김치가 되었다. 저녁에 엄마에게 전화해 재미 삼아 오늘의 이야기를 해 드렸더니 오히려 미안해 하셨다.
“엄마가 뭐가 미안해. 나는 절대로 우리 자식들 김치 안 담가 줄 거야.” “어디 그러나 보자.”


엄마, 오래오래 건강하게 사셔서 내가 진짜 김치 담가 주나 안 담가 주나 꼭 지켜봐요. 그럴 줄 알았다고 핀잔도 주고 말이야. 사랑해, 엄마!



오영숙 님 / 경기도 용인시 역북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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