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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들고 길 건너기
손들고 길 건너기



월드컵의 뜨거운 열기에 늘 잔치 같은 날들이었다. 생활은 자연 월드컵에 맞춰져 있었고, 우리나라 경기가 끝난 다음날은 생각할 겨를도 없이 미뤄 뒀던 장보기에 들어갔다. 시험기간이라는 동생까지 설득해 아버지와 함께 시장에 갔다. 오랜만에 시장의 시끌벅적함에 생기를 얻고, 필요한 물건도 사고 즐겁게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사거리 앞에서 신호 대기중이다가 차가 출발했는데 앞좌석에 앉은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거, 참 안 됐네. 언제까지 저러고 있을 작정이지?”
“뭐가요?”



아버지는 우리가 지나쳐 온 횡단보도 앞을 보라고 하셨다. 그 앞에는 다섯 살쯤 돼 보이는 사내아이가 오른손을 번쩍 든 채로 서 있었다. 횡단보도 앞에는 신호등이 없었고 차들이야 신호를 받으면 자연 앞으로 갈 수밖에 없으니 같이 건너 주는 사람이 없는 이상 작은아이는 손을 든 채로 차가 멈추거나, 지나가지 않을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언니, 쟤 어떡하지? 어! 건넜어. 어떤 아줌마가 같이 건너 주네.”



꽤 멀리 왔는데도 뒤를 쳐다보고 있던 동생이 마치 제 일이라도 된 듯 기뻐하며 호들갑을 떨었다.



작고 통통한 사내아이의 올린 손은, 집에 돌아와서도 쉽사리 잊히지 않았다. 분명 부모님이나 유치원 선생님에게서 들었을 손들고 건너기. 어려서는 따라하던 그 작은 마음을, 어째서 자란 다음에는 잃어버리게 되는지. 그 작은 마음이 지금도 어린 시절처럼 자연스럽다면 그 아이가 그토록 오랫동안 손을 든 채로 차가 멈춰 서거나 혹은 어른이 함께 건너 줄 때까지 기다리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그 아이를 통해 내가 잃고 살아온 작은 마음에 대해 오래오래 생각해 보았다.



곽경란 님 / 부산 금정구 부곡1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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