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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시 내 아들 |  | |
| 역시 내 아들
김장을 하느라 정신이 없는데, 네살바기 막내 재현이가 자꾸 마늘을 찧겠다며 떼를 쓴다. 귀찮기도 하고 마음이 바빠 안 된다고 했더니 결국 울음을 터뜨린다. 냉정한 엄마는 아이를 방에 들여보냈다. “그냥 하고 싶은 대로 놔 두지 그러냐” 하는 어머니 말씀에 “쟤 고집 키워 주면 나중에 더 고생해요. 모른 척 하세요!” 하고 못을 박았다.
한 시간을 방 안에서 떼쓰며 울부짖는 손주 녀석이 안되었던지 결국 어머니께서 아이를 안고 나오셨다. 재현이 녀석, ‘엄마, 내가 이겼지?’ 하는 눈빛이다.
김장이 끝난 뒤 지친 몸을 이끌고 방으로 들어간 나는 기가 막혔다. 차곡차곡 개어 놓은 수많은 빨랫감들이 온 방안에 다 흩트려져 있는 것이다. 아마 제 성질을 못 이겨 차고 던지고 물어뜯었겠지. “이 못된 녀석!” 소리 지르는 내 머릿속에 아득한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초등학교 1학년 어느 날, 유난히 허기를 느끼며 30분이 넘는 길을 달음질쳐 집에 왔다. 엄마도 안 계셨고 집안엔 먹을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었다. 밥솥마저 비어 있었다. 배도 고프고 화가 나 분을 삭일 길이 없었다. 그때 두리번거리던 내 눈길이 선반 위에 멈추었다. 커다란 플라스틱 옷바구니였다. 나는 수북이 개어 놓은 옷들을 뒤엎고 던지고 차면서 화풀이를 했다.
그리고 한참 지나 마음이 안정된 뒤 슬슬 겁이 나기 시작했다. 분명 엄마가 오시면 매를 맞을 것이 뻔했다. 화는 다 풀었으니 엄마 모르게 뒷처리를 해 놓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여덟 살이었던 내 키만큼 쌓인 옷들을 다시 개어 놓기 시작했다.
그 뒤 다시는 내가 손해 보는 화풀이는 하지 말자고 결심을 하고 또 했다. 그런 내 앞에 지금 어린 시절의 나와 똑같은 악동이 버티고 있다. 정말 피는 못 속이는 걸까?
이분희 님 / 부산시 북구 구포1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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