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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주 구천동 외할머니댁
무주 구천동 외할머니댁



우리 외할머니댁은 무주 구천동, 하늘에는 왕별들이 따닥따닥 붙어 있고 은하수 타고 쏟아진 달콤한 별들이 물속에 녹아 흐르는 은빛 동네이다. 어릴 적 잠시 할머니댁에서 살았던 때가 있는데, 도시에서 나고 자란 나로서는 그곳이 ‘별천지’였다.



아직 코도 뚫지 않은 어린 송아지를 쫓아 다니던 일, 송사리의 반짝이는 비늘이 좋아 냇물에서 고사리만한 손으로 물을 움켜내던 일, 도라지 캐시는 할머니 곁에서 보랏빛, 흰빛 도라지꽃을 톡톡 터뜨리던 일, 파란 새끼 청개구리를 보고 화들짝 놀라 할머니 바지춤에 매달리던 일, 꽁지 빨간 고추잠자리 잡는다고 빨랫줄 앞에서 종일 장대 들고 설치던 일…. 그대로 한 편의 동화 같다. 그때는 너무 싫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뚝배기에서 부글부글 끓어 넘치던 된장찌개의 구수한 향은 그 어떤 향수보다 오래도록 기억될 훈훈한 향기가 아닐 수 없다.



할머니는 그렇게 내 기억, 아름다운 추억의 주인이시다. 몇 년 전 외할아버지를 앞서 보내시고, 홀로 시골에 계시는 할머니가 안쓰러워 이곳으로 오셨으면 싶은데, 할머니는 이곳 부산보다 그곳이 좋다고 하신다. 그렇게 지내시면서 할머니는 자식들에게 고춧가루, 쌀, 김치 등을 보내 주신다. 그네들 속에는 할머니 냄새가 배어 있다. 꼼꼼하게 챙겨진 물건들을 보면 할머니의 사랑이 느껴져 한참 동안 코를 대고는 할머니 냄새를 찾는다.



얼마 전 할머니를 보고 깜짝 놀랐다. 작고 굽은 등허리와 앙상한 손에서 험난한 세월을 살아오느라 약해지신 할머니를 보았다. 그런 내 마음을 아실 리 없는 할머니는 그 앙상한 손으로 몇 번이고 나를 쓰다듬으셨다. 이 손녀딸의 감촉을 당신 손 끝에 오래오래 남기시려는 듯이…. 할머니의 약해진 모습에 가슴이 저려 왔다. 그 옛날의 살굿빛 시골이 점점 멀어지는 것 같아, 누런 송아지의 금빛 추억이 흐려지는 것만 같아 마음이 아팠다. 이제야 부산은 답답하고 시골이 좋으시다던 할머니의 시골 사랑이 어렴풋이 느껴진다.


이초미 님 / 부산시 남구 대연4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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