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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버스기사 이야기
어느 버스기사 이야기



지난 4월, 집안에 초상이 있다는 부고를 받고 고향을 찾았다. 문상을 마치고 한식 때 하지 못한 성묘도 할 겸 선산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오랜만에 보는 고향의 경치는 예나 다름없이 아름다웠다. 성미들을 지날 무렵 버스가 서고 할머니 한 분이 보따리 하나를 챙겨들고 내렸다. 뒤 이어 할머니가 기사를 불러 내리는가 싶더니 기사는 다시 버스에 올라 출발했다. 그 뒤 기사는 한참 동안 투덜거렸다. ‘문이 열리지 않는 트렁크에 어떻게 짐을 넣었겠는가 노인이 노망이 들어 넣지도 않은 짐을 내 달란다’며….



나는 풍경에 취해 있어 상황을 잘 몰랐는데,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이야기를 들어보니 아까 내린 할머니가 버스 밑 짐칸에 짐을 실었다고 꺼내 달라 하셨는데, 몇 번 열려다가 트렁크가 열리지 않자 기사가 열리지도 않는 짐칸에 어떻게 짐을 실었겠느냐며, 치매가 있는 것 같다며 그냥 올라타서는 버스를 출발시킨 것이었다. 그런데 할머니가 노망이 난 거라며 몇 번이고 되풀이하는 기사를 보며 뭔가 석연치 않았고, 버스 안 사람들도 나와 같은 생각인 듯 개운치 않은 표정들이었다.



성묘를 끝내고 돌아오는 길, 버스를 타고 얼마쯤 왔을까 아무도 없는 언덕 위에서 갑자기 버스가 멈추었다. 족히 4, 5분은 기다렸을까 웬일인가 싶어 창밖을 내다보니 노인 부부가 머리에 짐을 이고 양손에 들고는 잰걸음으로 논둑길을 걸어 이쪽으로 오고 계셨다. 처음에는 잘 아는 사인가 싶어 기사에게 넌지시 물으니, 아니었다. 길가에 먼저 갖다 둔 짐 보따리를 보고 주위를 둘러보다 멀리 논가 집을 바라보니 부지런히 움직이는 손님이 보여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이다. 아침 저녁에는 버스가 자주 있지만 한낮에는 1시간에 한 대씩 있어 이 차가 가고 나면 한참을 더 기다려야 했을 것이다. 노부부는 몇 번이고 기사에게 감사의 인사를 했고, 버스 안 손님들도 모두 흐뭇한 얼굴이었다.



선산에 갈 때 버스기사의 행동과 돌아올 때 이 버스기사 행동이 어쩌면 이렇게 다를까 생각하는데, 아까 그 할머니가 그때까지 망연자실한 모습으로 앉아 짐을 싣고 가 버린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게 보였다. 이럴수가!



박영택 님 / 서울 서초구 서초1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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