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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산ㄴ |  | |
| 지난번 고향에 갔을 때 어머니가 우산 한 개를 불쑥 내밀었다. 마침 그날 비가 왔더라면 우산 속에 숨겨둔 어머니의 깊은 뜻은 빗물로 흔적없이 지워졌을지도 모른다.
햇살이 눈부신 날, 엉뚱하게 양산도 아닌 그 사연 많은 우산을 내어준다는 것은 왠지 심상치 않는 일이었다. 모르긴 해도 아마 어머니는 오래 전부터 딸에게 그 우산을 물려 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셨던 것같다.
욕심일지는 몰라도 어머니로부터 우산을 받는 순간 꼭 듣고 싶은 말이 있었다. 사느라고 바빠서 우산 한 번 챙겨주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린다는 말 정도는. 어머니는 애초에 그런 애잔하거나 멋스런 표현과는 거리가 먼 분이었다.
비오는 날 장삿길에서 돌아온 어머니와 생쥐꼴로 마주쳐도 에구! 내 새끼 하면 그만이었다. 그 한마디는 안스러움과 미안함을 대신하는 어머니만의 짧고 편리한 애정 표현법이었던 것이다. 그 날 어머니는 선뜻 딸에게 우산을 건네주기가 그다지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예전처럼 우산이 귀할 것도 없는 세상에 그나마 낡은 우산이었으니. 그러나 내 기억으로 그것은 어머니가 내 몫으로 주신 유일한 우산이었다. 말씨가 보드라운 것도 아니고, 화술이 좋지도 못한 어머니로서 딸의 묵은 아픔을 달래기 어렵다는 것도 알고 계셨던 것이다.
그래서 어머니는 할말을 모두 우산 속에 꼭꼭 숨겨둔 것은 아닌지. 새 우산은 오히려 분위기를 어색하게 만들지도 모르니 헌 우산이나마 슬그머니 비맞은 딸의 기억을 감싸안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지금 창밖에는 추억 속의 그 날처럼 소나기가 내리고, 학교 길은 온통 바쁜 걸음으로 아이들을 마중가는 우산 무리들이 꽃밭을 이룬다.
나는 우산 한 개를 옆에 끼고 어머니의 나팔꽃같은 우산을 활짝 핀다.
비가 그치면 우산도 한송이 낙화로 지고 말 것이다. 꽃피는 것이 짧은 순간이라 舜이라고 불린다는 나팔꽃처럼 하루살이로 단명하는 우산 .이제는 우산에 대한 아픈 추억들과 화해를 하고 싶다. 이 비가 그치기 전에 ...
김채영수필 ˝우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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