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joungul.co.kr 에서
제공하는 좋은글 입니다.
바쁜 일상 속에 잠시 쉬어가는 공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
|
|
|  | 여름나무 같은 삶과 사랑을 |  | |
| 여름나무 같은 삶과 사랑을
옛시대에선 보고 싶은 마음을 가슴 안에 간직하며 사는 사람들이 많았던 듯합니다. 전화도 없던 그 시절, 밤을 지새워 간곡한 긴 편지를 쓰며 지우며 하면서 말입니다. 마음을 열고 막혀 있던 진실들을 드러냄이란 먼저 그 자신의 영혼을 거울 속에 비치는 일입니다. 구름밭 같은 안개를 뒤로 두르고 한 여자가, 혹은 한 남자가 가려진 모든 속마음을 헤쳐내어 전심의 가얏고를 울려내고 있스빈다. 먼 길을 와서 이제야 당도한 듯한 그 귀의심 한가닥뿐입니다.
거울 속에 담겨진 자신의 모습은 어떠할까요.
더하여 또 하나의 사람이 함께 떠오름은 더욱 어떤 자태일지요.
그와 더불어 한 운명을 둘이 나누고자 원할 때 그 심정 오죽이나 절실한 것이겠습니까. 바로 이 자리 이 시간에 다다르기 위해 먼데서 오랫동안 왔으며 천만 사람 가운데서 그를 찾았다고 하겠는데에서야 더 얼마나의 간절함이겠습니까.
하여 이제는 안주지에 이르렀다고 믿고 싶고 다시는 아무 데도 떠나지 않을 종착지의 확신을 다지고 싶습니다. 모름지기 위와 같이 희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웬일일까요.
온몸에 차오르는 건 목마름뿐입니다. 하기야 모든 사랑은 목마름과 더불어 솟아나며 마치도 열풍 속에 자라는 선인장과도 같습니다. 남녀간의 사랑일 땐 더욱더 그 성질이 치열합니다.
참 이상도 합니다.
모든 여건에서 충족되고 축복에 감싸인 듯만 싶을 떄도 사랑의 당사자에겐 평화가 없습니다.
모름지기 연애는 실연의 심정을 면치 못하며 갈수록 더 아쉽고 허기지고 비어있는 땅만을 바라보게 됩니다.
가장 잔혹하고 야만스런 예가되겠습니다만 식인종의 어느 부족에선 사랑하는 사람을 먹어 버리는 일까지도 발생하였었다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까지도 온전한 충족을 누려 보진 못했을 게 분명합니다. 소유란 단지 허무한 소멸일 뿐 사랑의 갈증을 푸는 데엔 아득히 못 미치는가 봅니다.
하면 무엇으로 그 목마름을 고치는가고 물으시렵니까.
모릅니다. 그러기에 우리 함께 그 해답을 의논하고 싶은 것이랍니다.
현대에도 ´보고 싶음´과 ´긴 편지´가 있겠는지요. 손 끝을 움직여 다이얼을 돌리거나 수첩에 써 넣은 하루치의 사무 절차 속에 한 줄의, 혹은 한 글자의 약칭으로 비좁게 처리되는 그 사람의 이름.
차 한 잔을 나누는 동안에도 몇 번씩 시계의 분침을 살피는 인색한 시간 할애. 이런 식으로 돌아가는 각박한 세태에서도 활활 피어오르는 보고 싶음의 숯불이 있을까요. 그건 행복한 부담쪽이기보다 고통의 멍에임에 틀림 없는데도 말입니다.
하지만 아마도 있긴 있을 거에요. 칠팔월 불볕에 아스팔트조차 검은 기름으로 녹아 진득거릴 때 열 개 그 이상으로 목이 타는 그리움이 사실상 존재함을 믿을 일입니다.
여름엔 신(神)마저 잊어 버리게 된다고 누군가 말했듯이, 망각과 나태의 거대한 수렁을 지나가면서 한시도 헐겁게도 지닐 도리가 없는 과부담의 격정과 불망을 한아름 그득히 앓고 있는 이들에게 나는 이 글을 보내고 싶습니다.
어김없이 그네의 주소를 찾아 배달되는 우정과 조언의 편지이고자 합니다.
되도록이면 위안과 격려의 노크이고 싶으며 최소한 그 염원의 전달이기를 바랍니다.
몇 백만의 사람이 북적대는 대도시의 그것도 끓는 용광로 같은 불볕더위 안에서 한낱 사람 이름의 화인(火印) 으로 살갗에 문신을 새긴 그를 위하여, 흐르며 또 채워 넘치는 사랑의 수량을 위하여, 그 성실하고 풍요한 인간적 번뇌 앞에 나는 이 글을 보내고 싶은거랍니다. 선풍기 바람을 쐬면서, 또한 슈베르트의 ´독일 미사곡´을 나직한 볼륨으로 들으면서 말입니다.
아스팔트와 시멘트의 도시 안이라고 해서 사람의 본질이 바뀔 순 없을테지요.
황량한 시대의 건조한 열풍 속에서도 들꽃을 심어 기르는 인간성의 녹지대를 믿어야 할 것이며 우리 모두 이 확신의 동지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사람이 받은 공간의 축복이란 귀한 것이니까요.
바로 오늘 저녁 나는 여의도의 작은 찻집에서 한 친구와 마주 앉아 얼음을 띄운 쥬스를 마시며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내 마음 흡족하고 다분히 감미롭기까지 했습니다.
얘기 중에 기쁨이란 단어가 섞이게 되면서 이상하게도 이 말을 감싸 두르는 뿌듯한 조명을 느꼈습니다. 신선하면서 이 말 한 마디가 빛의 실타래를 풀어내는 데에 놀라면서 하나의 싯귀를 떠올렸습니다.
돌아오라 다리 위에
그 여자 만약 돌아온다면
나는 말하리라
아아 기쁘다 라고
이는 프랑스의 시인 아폴리네르의 글귀입니다. 그의 생애는 외롭고 가난했으며 실연의 깊은 상처 외에도 머리에 총상을 입어 세 번이나 개두 수술을 받는 등 참담한 고통으로 일관되다시피 했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위의 시어는 더더구나 비통하고 아름답습니다.
만남은 곧 기쁨입니다.
만나기 전에 그가 이미 존재했다는 눈부심, 그와의 만남이 실현되었다는 감동, 여기서부터 기쁨은 자라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한 그루 묘목이 땅 속에 뿌리 내리기도 전에 사나운 기상은 사정없이 엄습합니다. 지나치게 가물거나 엄청난 장마가 퍼붓기도 합니다. 만나는 시간은 적고 부재의 시간만이 많아 가슴과 목을 마구 감아 죄는 명주 피륙이 되곤 합니다.
너무나 빨리 사랑의 목마름은 와 버리고 그저 암담한 자의식뿐으로 날이 새곤 또 날이 저뭅니다.
그러나 만남을 따라오는 찬란한 기쁨을 결코 의심해선 안됩니다. 아무리 비싼 대가라도 아깝쟎이 치를 ´만남의 축복´을 진흙에 내굴릴 순 없습니다. 태산 준령의 시련이 가로막더라도 기쁨의 복습만은 게을리하지 말아야 합니다.
특별한 만남과 운명의 사람, 이에 절대의 의미를 부여하는 이상엔 저절로 연분의 한 전형이 생겨나며 비록 한 연분을 가리고 새로운 연분이 문을 열 때라도 흙 속에 뿌리 내린 나무의 핏줄을 끊어낼 수는 없습니다.
한 번 돋아난 것의 강건한 근력 위에서만 새로운 관계가 자라도 자랄 것인 바 어떤 여건 아래서도 귀중한 만남들은 깡그리 잊어지는 일이 생길 수 없습디다.
보십시오.
이즈음 과수에는 잘디잔 과일이 달리고 여린 과육 속엔 훗날의 과일 나무를 약속하는 씨앗들이 꺠알처럼 박혀 있습니다. 사람 속의 능력도 이처럼 오늘을 위한 몫과 후일을 예비하는 비축이 함께 있는 것입니다.
<전략>
부끄러운 건 사람
사랑이 모자라 서두른 이별과
세월이 남았는데
문 닫은 마음
자연이여
사람 중에 떠나간 자를 용서하라
사람 중에 보낸 자도 용서하라
이 시는 발표 후 챙겨두지 못하여 까맣게 잊었다가 우연히 어느 분의 글 속에 인용되었음을 보고 얼마 전 찾게 된 것입니다.
돌아다보면 사랑에 따라오는 아픔 따위에 섣불리 겁먹은 나머지 황량한 도시인의 습성을 따라 그저 종종걸음으로 바쁘게 살아오기만 했었습니다.
사랑의 어려움 중에 가장 어려운 건 ´그 사람의 부재(不在)´이겠지요. 사랑하던 사람끼리 맥없이 헤어지고마는 까닭인들 함께 있지 못하는 아픔탓에 그리 되는 경우가 대부분일 겁니다. 그러므로 이를 인내하고 고통을 품 속으로 거두어들이는 근력이야말로 성인적인 능력이라고 볼 만합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영감과 촉매를 나눌 수 있습니다. 그가 준 것을 잘 가꾸어 꽃피워야 함이 사랑의 과제라 할 때 이 과제와 그의 부재 사이에 사랑의 험준한 계곡은 아득히 솟아 있는 것임을.
그러나 사랑은 그 자체가 이미 행운이며 축복이므로 하여 이에 더 보탤 선물까지를 꿈꾸어선 안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사랑을 가졌으면서 충족과 독점을 더하여 탐내고 언제나 함께 있으려 하며 여기에다 영원 운운의 사치마저를 원하는 일은 과욕일 것도 같습니다. 그렇다면 사랑 그 본연의 광채만으로도 족하다 할 겸허를 배워야 겠습니다.
사랑은 크고 너그러워야 합니다. 또한 사랑은 서로를 만들어 줍니다. 만들어 주면서 만들어지기도 하는 관계 사이의 균형에도 애써야 합니다.
내면적 유대, 내적 생명의 성숙한 개화란 그 자신의 최선이면서 관계 사이의 최선도 될 것입니다.
보고 싶음을 기르십시오.
사랑의 온갖 성실이 배어들어 저편 이의 내부에 단맛의 양분으로 차오르게 하십시오. 사랑엔 어차피 편안함이 없으니 안일한 타성의 살을 가르고 고통에 섞여 자라는 생명의 새 넝쿨을 뽑아내야 합니다.
가열한 사랑의 명령이 가슴 한가운데에 떨어져 올 때 조용히 일어서야 합니다. 온마음으로 대답하면서......,
여름 나무 같은 힘과 건강. 그 신선함과 초록빛과 사장 좋은 수분으로, 그리고 기도로써 말입니다.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