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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통령과 여경의 私談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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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과 여경의 私談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 재임 때다.
최대 정적이었던 공화당 소속 뉴트 깅리치 하원의장의 모친이 TV 인터뷰를 했다.
입이 걸죽한 그녀는 힐러리를 ‘나쁜 X(Bitch)’라고 욕했다.
원래는 ‘오프 더 레코드(비보도)’로 한 얘기지만 이 말은 고스란히 미국 전역에 알려졌다.
그러자 클린턴 대통령과 힐러리는 깅리치와 그의 어머니를 백악관으로 초대했다.
함께 저녁을 먹은 후 넷은 활짝 웃는 모습으로 백악관 현관에 나타났다.
미국 국민들도 함께 웃었다.
지도자의 여유는 국민들을 안심시킨다.
여유의 격(格)과 폭(幅)은 국정운영에 묻어나게 마련이다.
깅리치는 클린턴 대통령의 퇴임 때 “내가 만난 사람 중 가장 수완이 뛰어난 정치인”이라고 고개를 숙였다.
우리는 어떤가. 엊그제 경찰청의 전도유망한 여경이 노무현 대통령에 관한 시중의 악소문을 전했다는 이유로 좌천됐다.
내용은 별 것 아니다. “노무현 대통령과 강금실 법무장관이 ‘섬싱’이 있다더라” “노대통령과 권양숙 여사가 사이가 안좋아 가끔 부부싸움도 한다더라”는 ‘카더라’가 전부다.
점심 식사 뒤 구내 커피숍에서 하하호호 웃고 떠들며 한 얘기다.
당사자는 “여경들끼리 모인 사석에서 시중에 떠도는 소문을 말했을 뿐”이라고 해명했지만 윗분들의 생각은 달랐던 모양이다.
여경은 일선 경찰서로 쫓겨났다. “아무리 사적인 자리였다고 하더라도 청와대 하명수사를 맡는 특수수사과 직원이 대통령 사생활에 대한 음해성 루머를 근거없이 떠든 죄”가 그 이유다. 추상같은 단죄다.
불과 1주일여 전인 지난해 말 노대통령은 “내년 총선은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의 양자구도가 될 것” “민주당을 찍으면 한나라당을 돕는 것”이라고 했다.
총선 출마를 위해 청와대를 떠나는 비서관들과의 오찬 자리에서다.
정치권은 발칵 뒤집혔고 야당에선 ‘사전선거운동’이라고 불같이 들고 일어났다.
청와대는 “사적인 자리에서 한 얘기를 갖고 트집잡지 말라”고 했다.
현직 대통령이 총선 출마자들과 총선 얘기를 나눈 게 어떻게 사담(私談)이란 건지 의아하지만, 굳이 사적인 자리라면 그렇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똑같이 사적인 자리에서 한 말을 두고 여경은 벌을 받고, 대통령은 무사하다.
발언의 무게나 파장을 따진다면 대통령의 사담은 여경의 수다에 견줄 바가 아니다.
노대통령의 이른바 ‘사적인 자리’는 계속되고 있다.
지난 연말부터 시작된 열린우리당 관계자들과의 면담은 바깥에 드러난 것만도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다.
여권에선 “요즘 청와대 들어가서 밥 한끼 못 먹으면 팔불출”이란 말까지 나돈다.
“나도 실은 밥 먹고 왔는데…”라고 뒤늦게 털어놓는 인사가 속출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언론에는 이들의 입을 빌린 ‘영남권 공략’ ‘총선 올인 베팅’이란 노대통령의 총선 구상이 연일 소개되고 있다.
명백히 ‘식사 정치’ ‘관저 정치’지만, 청와대는 “뭐가 문제냐”는 반응이다.
노무현 정부는 갈수록 정정당당함을 잃고 있는 것 같다.
대선 자금도 ‘티코와 리무진’, ‘소도둑과 닭서리론’으로 넘어갈 일이 아니다.
경향신문 신년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10분의 1이 넘지 않더라도 똑같이 책임져야 한다’는 여론이 80%다.
도덕성·청렴성을 간판으로 내걸고, 이슬만 먹고 사는 것처럼 행세했던 그들에 대해 국민이 느끼는 실망과 배신감은 오히려 한나라당의 10배란 점을 알아야 한다.
청와대는 자신에게 엄격하고, 타인에게 관대해질 필요가 있다.
〈박래용/경향신문 정치부 차장대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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