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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굴묘편시 掘墓鞭屍 |  | |
| 굴묘편시 掘墓鞭屍
[字解]
掘(팔 굴)
墓(무덤 묘)
鞭(채찍 편)
屍(주검 시)
[意義]
묘를 파헤쳐 시체에 매질을 한다는 뜻으로, 통쾌한 복수나 지나친 행동을 일컫는 말이다.
[出典]
오자서(伍子胥)의 고사(故事).
[解義]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오자서(伍子胥)는 초(禁)나라 평왕(平王)의 태자 건(建)의 태부(太傅)요 충신이었던 오사(伍奢)의 아들이었다. 건의 소부(少傅)였던 비무기(費無忌)가 오사(伍奢)를 시기하여 평왕(平王)에게 참소하자, 평왕은 오사와 큰 아들 오상(伍尙)을 죽이고 자서까지 죽이려 하였으나, 그는 재빨리 몸을 피해 오나라로 망명하였다.
그리고는 오나라의 왕 합려에게 줄기차게 초나라를 토벌할 것을 진언했다.
9년 뒤 자서는 드디어 뜻을 이루어 초나라로 쳐들어가 평왕의 뒤를 이은 소왕(昭王)을 잡아 죽이려고 했으나, 이미 달아난 뒤였으므로 뜻을 이룰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때는 이미 죽은 평왕의 무덤을 찾았는데, 평왕은 생전에 이미 그의 보복을 예견하고 자신의 무덤을 깊은 연못 속에 만들고 묘의 조성작업에 종사한 일꾼 500명을 모두 죽여 버린 까닭에 무덤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 작업에 종사했다가 유일하게 살아남은 한 노인이 알려주어, 자서는 무덤을 파헤치고 시체에 철장(鐵杖) 300을 치는 등 분을 풀었다.
오자서의 친구 신포서(申包胥)가 이 소문을 듣고, ˝그대의 그러한 복수방법은 지나친 게 아닌가…˝라고 책하였다 한다.
[부관참시 剖棺斬屍]
죽은 뒤 큰 죄가 드러난 사람에게 극형(極刑)을 추시(追施)하던 일.
무덤을 파고 관을 꺼내어 시체를 베거나 목을 잘라 거리에 내걸었다.
특히 연산군 때 성행하여 김종직(金宗直) ·송흠(宋欽) ·한명회(韓明澮) ·정여창(鄭汝昌) ·남효온(南孝溫) ·성현(成俔) 등이 이 형을 받았다.
[出處]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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