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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도물 阿堵物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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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도물 阿堵物
[字解]
阿(건성으로 대답하는 아)
堵(담 도)
物(재물 물)
[意義]
이 물건이라는 말로, 돈을 가리키는 말이다.
[出典]
세설신어(世說新語) - 규잠편(規箴篇).
[解義]
위진시대(魏晉時代)에 왕이보(王夷甫)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죽림칠현(竹林七賢) 중 한 사람인 왕융의 사촌동생으로 서진 말기 귀족사회에 유행하던 청담(淸談)의 중심인물이다.
그러나 귀족들이 현실을 벗어나 청담에만 몰두해 있던 탓에 서진은 흉노에게 망하고 왕이보는 사로잡혀 죽고 말았다.
왕이보는 속된 것을 싫어하는 고아한 성격이었으나 반대로 그의 아내는 재물과 권력을 좋아하는 여자였다.
그래서 돈을 싫어하는 왕이보를 시험해보기 위해 여종을 시켜 그가 잠든 사이 돈을 침대 둘레에 가득 쌓아두게 했다.
잠에서 깨어보니 돈에 막혀 나갈 수 없게 되자 왕이보는 여종을 불러 말했다.
“어서 이 물건들을 모두 치우도록 해라[擧却阿堵物].”
돈을 싫어하는 고아한 성격의 그는 끝까지 돈을 돈이라 칭하지 않았다.
이때부터 돈을 지칭하는 말로 대신 쓰인다.
[청담 淸談]
중국의 위(魏) ·진(晉) ·육조(六朝) 시대에 유행한 철학적 담론(談論).
후한(後漢) 때 당고(黨錮)의 화(禍)로 많은 고절(高節)의 선비가 횡사한 이래 귀족적 지식인들은 난세에 생명을 부지하고자 세속(世俗)에서 도피, 예절의 속박을 버리고 정치적 비판, 인물 평론을 중심으로 한 청의(淸議)를 일삼았다.
위(魏)나라에 들어와 정치적 언론탄압(言論彈壓)과 유학(儒學)의 쇠퇴를 계기로 노장(老莊)의 공리(空理)에 바탕한 철학적 담의(談議)로 발전, 청언(淸言)이라고도 하였다.
죽림7현(竹林七賢)을 대표로 하는 탈속적 지식인들의 사교계의 산물에 지나지 않으나 당시의 청담가로서는 위나라의 하안(何晏)과 왕필(王弼), 서진(西晉)의 왕연(王衍) ·악광(樂廣) 등이 유명하다.
동진(東晉)시대에는 이 때 퍼지기 시작한 불교의 교리까지도 청담의 대상으로 하여, 한때는 세속적인 정신에 저항, 참되고 영원한 것을 구하려는 면도 보였으나, 이것이 귀족의 사교장에서 발생된 것이었기 때문에 역시 전체적으로는 오락적 분위기를 벗어날 수 없었다.
남북조시대에 와서는 청담의 형식도 바뀌어 오히려 공개토론회 같은 성격을 띠게 되었으나 귀족적 오락이라는 점에는 변함이 없었다.
이러한 풍조는 불교의 성행으로 결국 쇠퇴하고 말았으며, 이 시대의 청담을 모은 책으로는 남송(南宋)의 유의경(劉義慶)이 저술한 《세설신어(世說新語)》가 있다.
[參考]
죽림칠현(竹林七賢)(http://kr.encycl.yahoo.com/print.html?id=1409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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