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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 |  |  | 季布一諾(계포일락) |  |  |  | 
 |  | 季布一諾(계포일락)
 
 [字解]
 季(끝 계)
 布(베 포)
 一(한 일)
 諾(허락할 락)
 
 [意義]
 ´계포가 승낙한 한마디의 말’이란 뜻으로 한번 약속을 하면 반드시 지킨다는 의미이다.
 
 [出典]
 사기(史記)-계포전(季布傳)
 
 
 [解義]
 초(楚)나라 사람 ‘계포(季布)’는 젊었을 때부터 의협심(義俠心)이 강한 사나이로 한번 ´좋다´라고 약속한 이상 그 약속은 반드시 지키는 사람이었다.
 
 서초(西楚)의 패왕 항우가 한(漢)나라의 장수로서 몇 번이나 유방을 괴롭혔으나 유방이 천하를 통일하게 되자 천금(千金)의 현상금이 걸려 쫓기는 몸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그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그를 밀고(密告)하지 않았으며 도리어 그를 고조 유방이 받아들여 주도록 천거까지 하였다. 그 결과 그는 사면이 되어 처음에는 낭중(郎中)이란 벼슬에 있다가 혜제(惠帝)때는 중랑장(中郞將)이 되었다.
 
 흉노의 선우가 당시 전력을 한 손에 쥐고 있던 여태후를 깔보는 편지를 조정에 보내온 적이 있었다. 진노한 여태후는 제신들을 불러모아 대책을 숙의했는데, 상장군 번쾌가 앞으로 나서며 ˝제가 10만 병력을 이끌고 흉노족을 혼내 주겠습니다.˝라고 말하자 여태후의 눈치만 살피고 있던 제신들은 이구동성(異口同聲)으로 이 말에 맞장구를 쳤다.
 
 이 때 ˝번쾌의 목을 자르라.˝하고 외친 사람이 있었는데 다름 아닌 바로 계포의 목소리였다.
 ˝고종 황제도 40만 대군을 이끌고 가셨지만 평성(平城)에서 그들에게 포위 당한 적이 있지 않은가. 그런데도 번쾌는 10만 군대로 흉노를 무찌르겠다고 하니 다른 사람 모두를 무시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감히 그런 말을 할 수 있는가. 지난날 진나라가 망한 것도 오랑캐를 상대로 무모한 일을 벌인 때문에 진승(陳勝)등이 그 헛점을 노리고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그 상처가 아직 아물지도 않았는데 번쾌는 황제에게 아첨하여 천하의 동요를 일으키려 하지 않는가.˝
 
 모두들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계포의 목숨도 이제 끝나는구나 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여태후는 회의를 끝내고는 두 번 다시 흉노 토벌에 대해 얘기하지 않았다.
 
 그 무렵 초나라에 ‘조구(曺丘)’라는 변론에 능하고 권세욕과 금전욕이 강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당시 황제인 경제(景帝)의 외숙 뻘 되는 두장군(竇長君)의 집에도 자주 내왕하는 터였다.
 
 이 소문을 들은 계포는 두장군에게 ˝조구는 쓸모 없는 자이니 교제를 끊는 것이 좋겠소.˝라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조구가 황제의 숙부인 두장군을 찾아가 계포에게 소개장을 써달라고 부탁하자 ˝계포는 자네를 탐탁지 않게 여기고 있으니 가지 않는 것이 좋겠소.˝라고 말렸으나 조구는 먼저 계포에게 편지를 보낸 다음 화가 머리끝가지 치밀어 있는 계포를 찾아가 이렇게 말했다.
 
 ˝초나라 사람들은 황금 백근을 얻는 것보다 계포의 한마디 승낙[季布一諾]을 받는 것이 낫다고 말하고 있는데 어떻게 그렇게 유명해지셨습니까. 우리는 본래 동향이므로 당신의 얘기를 각처를 돌아다니며 퍼뜨리면 당신의 이름은 온 천하에 떨쳐질 것입니다.˝
 
 이 말을 듣고 계포는 마음이 흐뭇해져 조구를 몇 달 자기 집에 머물게 하고 극진히 대접했는데 조구로 인해 계포의 이름은 더욱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參考]
 계포(http://kr.encycl.yahoo.com/print.html?id=12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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