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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薰一유(일훈일유)

一薰一유(일훈일유)

[字解]
一(한 일)
薰(향풀 훈)
一(한 일)
유(썩어 냄새나는 풀 유) *艸밑에 猶.

[意義]
선(善)이 악(惡)에 의해 가려짐을 비유한 말이다.

[出典]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희공(僖公) 4년.

[解義]
춘추 시대, 진(晉)나라 헌공(獻公)에게는 최소한 6명의 부인이 있었다. 첫째 부인은 가(賈)나라 출신으로서 아이가 없었으며, 또 다른 부인은 원래 아버지의 첩(妾)으로서 이름이 제강(齊姜)이라는 여인이었다. 그러나 헌공은 여희(驪姬)를 가장 총애하였다.

여희는 야심이 매우 강한 여자로 항상 왕후(王后)가 되려는 생각에 자기의 아들인 해제(奚齊)를 태자로 세워 왕위를 계승하게 하려고 하였다. 여희는 이를 위해 헌공의 또 다른 부인인 제강(齊姜)이 낳은 태자 신생(申生)을 제거할 계획을 꾸몄다.

어느 날, 여희가 태자 신생에게 말하였다.
˝어젯밤 왕께서 태자의 생모(生母)인 제강을 꿈에서 보셨다는데, 태자도 곡옥(曲沃)에 가서 어머니께 제사라도 드리세요. 그리고 제사 드렸던 음식은 가지고 와서 부왕(父王)께 드리도록 하세요.˝

신생은 본시 효심이 강한 사람이라 여희의 말대로 제사를 지내고 고기와 술을 헌공에게 바치고자 하였다. 여희는 마침 헌공이 사냥에서 아직 돌아오지 않은 틈을 타 술과 고기에 독을 넣었다.
헌공은 술과 고기의 색깔과 냄새가 이상하다고 생각되어 이를 의심하게 되었다.
헌공은 고기는 개에게 먹여 보고, 술은 환관에게 마셔보도록 했다. 개와 환관은 그 자리에서 죽고 말았다. 헌공은 누군가가 음식에 독을 넣었음을 알고 크게 노하였다.

이때 여희는 통곡을 하면서 신생을 모함하였다.
˝이 음식들은 태자 신생이 보내온 것인데, 당신을 죽이려는 것이었군요. 저는 이럴 줄은 생각지도 못했는데.˝
헌공은 여희의 말을 듣고 사람을 보내 태자를 죽이려 하였다.
태자 신생은 하는 수없이 도망하였으나, 얼마 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 일이 있은 후. 여희는 더욱 총애를 받게 되었다.

헌공은 여희를 왕후로 세울 준비를 하면서, 사람을 불러 점을 치게 하였다. 거북점의 결과는 매우 길(吉)하지 않다는 괘가 나왔다. 헌공은 이를 불만스럽게 생각하여 점대로 점치는 사람을 불러 다시 점괘를 뽑아 보도록 하였다. 길(吉)하다는 점괘가 나왔다.

그러자 거북점을 치는 이가 말했다.
˝점대로 치는 점은 잘 안 맞고, 거북등으로 치는 점은 잘 맞사오니 잘 맞는 쪽을 따르시는 게 좋습니다. 그리고 점괘의 풀이에 이르기를 ´어느 한 사람이 사랑해주면 잘난 체하여 마음이 변해지고, 또 군주가 기르는 숫양을 도둑질한다. 하나의 향기 나는 풀과 하나의 더러운 냄새가 나는 풀을 같이 놓아두면 10년이 가도 더러운 냄새만 남게 된다[一薰一유, 十年尙猶有臭]´라고 하였으니, 절대 아니 되옵니다.˝

그러나, 헌공은 여희를 왕후로 세우고, 그녀의 아들 해제(奚齊)를 태자로 세웠다.
헌공이 죽은 후, 해제는 대신(大臣)들에게 살해되었으며, 진나라 조정은 십여 년 동안 조용할 날이 없었다.

* 晉(나아갈 진) 獻(바칠 헌) 賈(값 가) 妾(첩 첩) 齊(가지런할 제) 姜(성 강) 驪(가라말 여,려) 姬(성 희) 奚(어찌 해) 齊(가지런할 제) 申(아홉째 지지 신) 尙(오히려 상) 曲(굽을 곡) 沃(물 댈 옥) 猶(오히려 유) 臭(냄새 취)

[類似語]
薰유不同器(훈유불동기:향내나는 풀과 누린내 나는 풀은 같은 그릇에 두어서는 안됨).
薰유異器(훈유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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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參考]
寒 食(한식).
寒食은 설 단오 추석과 함께 우리나라 4대 명절의 하나로 이 때가 되면
民間에서는 술과 과일, 식혜, 떡 등의 음식을 준비해 제사를 올렸다.
또조상의 묘를 찾아 省墓(성묘)하고 封墳(봉분)이 헐었으면 보수하는가 하면 주위에 나무를 심기도 한다. 대개 양력 4월 5, 6일쯤에 해당되므로 나무를 심기에도 적합해 우리나라에서는 4월 5일을 植木日(식목일)로 정해놓고 있다.

寒食날 省墓를 하게 된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으나 대체로 唐나라 때부터였다고 하며 우리나라에 전해진 것은 新羅 때로 알려져 있다.
고려시대에는 관리들에게 省墓를 허락했으며 조선시대에는 內兵曹(내병조:궁중의 사무를 관장하던 관청)에서 버드나무 불씨를 만들어 올리면 임금은 다시 그 불씨를 신하들에게 나눠주었다고 한다.

寒食의 유래에 대해서는 애틋한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 온다.
춘추시대 晉(진) 獻公(헌공)은 애첩 驪姬(여희)에게 빠져 소생인 奚齊(해제)에게 왕위를 물려주기 위해 太子 申生(이름 夷吾)을 죽였다. 이에 겁이 난 동생 重耳(중이)는 그 길로 도망쳐 19년이라는 기나긴 亡命생활을 해야 했다.
이 때 그가 겪은 고초는 이루 다 형언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事必歸正(사필귀정)이라고 했던가. 마침내 귀국하여 진의 왕위에 오르니 이가 바로 晉文公(진문공)이다.

그가 亡命 중일 때 그를 가장 극진하게 보필했던 신하에 介子推(개자추)가 있었다. 한번은 重耳가 고기를 먹고 싶다고 하자 자신의 허벅지 살을베어 국을 끓여 주기도 했다. 그럼에도 重耳는 귀국한 뒤에 그를 부르지않았다. 아무리 기다려도 소식이 없었다. 그는 모든 것을 단념하고는 어머니를 설득하여 綿山(면산)으로 은거하고 말았다.

‘아차!’하고 후회한 文公이 그를 찾았지만 이미 늦었다. 급히 군사를풀어 綿山을 샅샅이 뒤졌지만 허사였다. 그는 신하의 건의를 받아들여 불을 지르게 했다.
하지만 산이 다 타도록 그는 나타나지 않았다. 알고 보니 어머니를 업은 채 커다란 버드나무를 껴안고 새까맣게 타 죽은 뒤였다.

文公은 너무도 애통한 나머지 슬피 울었다. 그리고는 介子推가 죽은 날을 기념하기 위해 매년 이 날만은 禁煙(금연·연기를 피우지 못하게 함)의 날로 정하여 불을 피우지 못하게 했다. 이 때부터 民間에서는 더운 밥을 먹지 않고 寒食(찬밥)을 먹게 되었다.

鄭錫元(한양대 안산캠퍼스 교수·중국문화)sw478@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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