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좋은글 나누기
joungul.co.kr 에서 제공하는 좋은글 입니다.
바쁜 일상 속에 잠시 쉬어가는 공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倚門藉手(의문자수)

[한국성어] 倚門藉手(의문자수)

[字解]
倚(의지할 의)
門(문 문)
藉(빌릴 자)
手(손 수)

[意義]
의문(倚門)이란 남의 집 문에 기대어 서 있다는 말이니 걸식(乞食)의 뜻이요, 자수(藉手)는 손을 빌린다는 뜻으로 하루하루 간신히 살아나간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이 성어는 남의 집 문전에서 걸식을 하여 간신히 끼니를 이어 나가는 상태를 의미하는 말이다.

[出典]
삼국유사(三國遺事) 권오(卷五) 빈녀양모(貧女養母).

[解義]
효종랑(孝宗郞)이 남산(南山) 포석정[鮑石亭:혹은 삼화술(三花述)이라고도 했다]에서 놀고자 하자 문객(門客)들이 모두 급히 달려왔으나, 오직 두 사람만이 뒤늦게 오므로 효종랑이 그 까닭을 물으니 그들이 대답했다.

˝분황사(芬皇寺) 동쪽 마을에 여인이 있는데 나이는 20세 안팎이었습니다. 그는 눈이 먼 어머니를 껴안고 서로 통곡하므로 같은 마을 사람에게 그 까닭을 물으니, 말하기를 ´이 여자는 집이 가난해서 빌어다가 어머니를 봉양한 지가 이제 여러 해가 되었는데 마침 흉년이 들어 걸식해다가 살리기도 어렵게 되어 이에 남의 집에 가서 품을 팔아 곡식 30석을 얻어서 주인집에 맡겨 놓고 일을 해왔습니다. 날이 저물면 쌀을 가지고 집에 와서 밥을 지어 먹고 어머니와 같이 잠을 자고, 새벽이면 주인 집에 가서 일을 했습니다. 이렇게 한 지 며칠이 되었는데 그 어머니가 말하기를 전일에 강비(糠粃)를 먹을 때는 마음이 편하더니 요새 쌀밥을 먹으니 창자를 찌르는 것 같아 마음이 편안치 못하니 어찌된 일이냐고 했습니다. 그 여인이 사실대로 말했더니 어머니는 통곡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여인은 자기가 다만 어머니의 구복(口腹)의 봉양만을 하고 얼굴빛을 잘 하지 못함을 탄식하여 서로 껴안고 울고 있는 것이요´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을 구경하느라고 이렇게 늦었습니다.˝

효종랑은 이 말을 듣고 측은해하여 곡식 100석을 보냈다.
낭의 부모도 또한 옷 한 벌을 보냈으며, 수많은 낭(郎)의 무리들도 곡식 1,000석을 거두어 보내주었다.

이 일이 왕에게 알려지자 그 때 진성왕(眞聖王)은 곡식 500석과 집 한 채를 내려 주고 또 군사들을 보내서 그 집을 호위해서 도둑을 막도록 했다.
또 그 마을을 표창해서 효양리(孝養里)라 했다.
그 뒤에 그 집을 희사해서 절을 삼고 양존사(兩尊寺)라 했다.


[原文] 貧女養母
孝宗郎遊南山鮑石亭.[或云三花述.] 門客星馳. 有二客獨後. 郎問其故. 曰芬皇寺之東里有女. 年二十左右. 抱盲母相號而哭. 問同里. 曰. 此女家貧. 乞畆而反哺有年矣. 適歲荒. 倚門難以藉手. 贖賃他家. 得穀三十石. 寄置大家服役. 日暮嗖米而來家. 炊餉伴宿. 晨則歸役大家. 如是者數日矣. 母曰. 昔日之糠粃, 心和且平. 近日之香呁, 膈肝若剌, 而心未安. 何哉. 女言其實. 母痛哭. 女嘆己之但能口腹之養. 而失於色難也. 故相持而泣. 見此而遲留爾. 郎聞之潛然. 送穀一百斛. 郎之二親亦送衣袴一襲. 郎之千徒, 厷租一千石遺之. 事達震聰. 時眞聖王賜穀五百石, 幷宅一廛. 卒徒衛其家. 以儆劫掠. 旌其坊爲孝養之里. 後捨其家爲寺, 名兩尊寺.
 
비즈폼
Copyright (c) 2000-2025 by bizforms.co.kr All rights reserved.
고객센터 1588-8443. 오전9:30~12:30, 오후13:30~17:30 전화상담예약 원격지원요청
전화전 클릭
클린사이트 선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