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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 고향



[고중숙의 사이언스 크로키]

영화 <맨 인 블랙> 1편의 마지막 장면에는 흥미로운 그래픽이 펼쳐진다. 뉴욕 맨해튼에서 하늘 위로 자꾸만 멀어지면서 카메라에 잡히는 모습을 담는데, 처음에는 지구가 한없이 작아지고 이어서 태양계도 그렇게 된다. 그리고 은하계 단계에 이르러 통째로 하나의 작은 구슬을 이루며, 이 구슬을 상상 속에서나 그릴 수 있는 거대한 외계 동물이 손으로 갖고 논다. 이 그래픽은 그 단계에서 멈춘다. 하지만 내용적으로는 이와 같은 ‘중층 구조’가 무한히 계속되리라는 암시를 담고 있다. 따라서 우리가 흔히 보는 유리 구슬을 엄청난 규모로 확대해보면 그 안에 수많은 성운이 담겨 있을 수 있다.

이처럼 어떤 구조가 그 세계의 규모를 무한히 축소 또는 확대하더라도 계속적으로 되풀이되어 나오는 모습을 ‘프랙털’이라고 부른다. 자연계에서는 프랙털의 예가 매우 많이 나타나며 흔히 산맥, 해안선, 눈송이, 식물의 몸체나 잎, 허파꽈리, 세포 안의 각종 구조 등을 그 예로 든다. 프랙털의 이런 특징은 ‘자기닮음체’라는 한 단어로 축약하면 쉽게 이해된다. ‘fractal’이란 단어도 ‘부분’을 뜻하는 ‘fraction’과 ‘-과 비슷한’을 뜻하는 ‘-al’을 합쳐서 만들었다. 이 이름은 미국의 수학자 만델브로트가 1975년에 제안했지만 프랙털의 기본 아이디어는 19세기 말부터 알려져왔다.

<맨 인 블랙>의 마지막 장면을 프랙털의 이런 특징과 비교해보면 우리 우주도 궁극적으로는 프랙털 구조가 아닌가 하는 의문이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사실 이런 생각은 프랙털 이론과 상관없이 아주 오래 전부터 여러 나라의 고대 신화나 종교 또는 사상체계 속에 다양한 형태로 표현돼왔다. 그러나 우주 안의 여러 모습들이 프랙털 구조를 띤다고 해서 우주 자체도 그렇다는 뜻은 아니다. 실제로 자연계에서 발견되는 프랙털 구조도 자기닮음의 단계가 몇 단계에 그칠 뿐 수학적 과정처럼 무한히 계속되지는 않는다. 무엇보다 프랙털 이론은 ‘기본 단위체’를 상정하는 현대의 소립자물리학과 정면으로 대립한다. 현재 소립자물리학은 실험적으로 쿼크의 단계까지 검증한다. 물론 앞으로 쿼크 이하의 존재가 드러날 것으로 예상되기도 하며, 이른바 ‘초끈’이니 ‘초막’이니 하는 개념들이 가장 유력한 후보로 제시되어 있다. 하지만 최종적으로 어느 것에 귀착되든 ‘궁극의 기본 단위체’가 있다고 보는 한 프랙털 식의 무한 반복은 필연 부정된다.

최근의 천문학적 관측 결과에 따르면 우리 우주는 갈수록 더 빠른 속도로 팽창하고 있다. 게다가 영국 에든버러 대학의 연구팀은 우리 우주가 생각보다 빠르게 늙어가고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이미 있는 별은 빠르게 식어가고 앞으로 새로 탄생할 별의 수는 자꾸만 줄어든다. 그리하여 비록 인간 수명에 비하면 엄청나게 오랜 뒤의 일이기는 하지만 결국 우리 우주는 지금까지의 예상보다 훨씬 이른 시기에 어둡고 추운 세계가 될 것이라고 한다. 이런 예측은 우주가 공간적으로뿐 아니라 시간적으로도 프랙털 구조가 아니란 점을 말해준다. 결국 현재로서 최선의 결론은 아득한 시원의 순간 빅뱅이란 한줄기 빛과 함께 무에서 출발한 우리 우주에게는 단 한번의 순환만 주어진다는 것이다. 그 귀결이 모두 마무리될 때 우주는 다시금 그의 영원한 고향인 무로 돌아가는 듯하다.

고중숙 | 순천대학교 교수·이론화학 jsg@suncho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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