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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비
미국의 전자공학자.

1958년 킬비가 개발한 모놀리식(monolithic, 單結晶) 집적회로는 현대 전자공학 전분야의 이론적·기술적 토대가 되었으며, 정보화시대를 연 초고속 컴퓨터와 대용량 반도체기억장치(컴퓨터 기억장치)의 개발을 꿈이 아닌 현실로 만들어놓았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2년 만인 1947년 성탄절 무렵, 이런 꿈 같은 세상이 다가올 것임을 예고하는 상징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반도체기술의 시작을 알리는 트랜지스터가 세상에 처음 등장한 것이다. 훗날 공동 개발자인 윌리엄 쇼클리, 존 바딘, 월터 브래튼에게 노벨 물리학상(1956)을 안겨준 트랜지스터는, 진공관보다 작고 안전하고 전력 소비량도 적은 소자였다. 실제로 이 작은 소자들을 배선회로판 위에 납땜해 복잡한 연산을 기계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계산기를 만들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이런 방식으로 컴퓨터를 만들기에는 필요한 트랜지스터의 수가 너무 많았다. 그래서 1950년대초부터는 트랜지스터·저항기·축전기 등을 하나의 복합 반도체 기판, 즉 집적회로 안에 내장하려는 시도가 나타났다.

잭 킬비와 로버트 노이스는 이러한 집적회로의 개발이 실제로 가능하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이들은 제각각 집적회로 연구에 몰두해 1958년 이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특허신청에서는 킬비가 한 발 앞섰다. 이 점에서 노이스는 불운했으나, 그가 개발한 집적회로는 뒷날 알루미늄을 전기 전도체로, 실리콘과 이산화실리콘을 각각 반도체와 절연체로 사용하는 형태로 응용되었다. 그는 1990년에 세상을 떠났지만 정보기술의 발전과 집적회로 개발의 초석을 놓은 인물로서, 실리콘밸리 창설자의 한 사람으로서 그의 이름은 널리 기억되고 있다.

그에 앞서 집적회로를 개발한 킬비는 1923년 미주리 주 제퍼슨 시에서 태어나 캔자스 주 그레이트벤드에서 자랐다. 1947년 일리노이대학교를 졸업한 그는 1950년 위스콘신대학교에서 전자공학 석사학위를 취득한 후 위스콘신 주 밀워키에 있던 글로비유니온회사의 센트럴연구소에 들어가 염기 세라믹과 실크스크린 회선을 연구·개발했다. 그 후 1958년 텍사스 주 댈러스 시의 텍사스인스트러먼츠사로 옮겼다. 그가 임시로 임대한 장비를 이용해 활성·불활성 소자를 한데 모아놓은 최초의 전자회로를 개발한 것이 바로 그 해 여름이었다. 이 회로는 서류집게 절반만한 크기의 반도체판 형태로 제작되었다. 마침내 1958년 9월 12일, 뒷날 세상을 바꾸어놓은 세계 최초의 간단한 마이크로칩 시험판이 공개되었다.

그가 개발한 집적회로는 트랜지스터 1개, 저항기 3개, 축전기 1개 등 모두 5개의 소자를 하나의 반도체판 위에 모아놓은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집적회로 제작이론과 시험판이 없었더라면 지금 널리 사용되고 있는 개인용 컴퓨터(PC), 초고속 디지털통신네트워크, 통신위성, 인터넷, 셀 방식 이동전화, 전자 레인지, 음성 메일, 무선 호출수신기, 전산화단층촬영(CAT) 같은 것들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사실 집적회로 개발은 물리학적 발견이라기보다는 기술적 발명에 해당하지만, 이를 통해 많은 물리학적 문제가 해결되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예컨대 집적회로의 부품인 알루미늄과 금을 실리콘에 부착할 때 나타나는 차이를 밝힌 것이나, 미량의 무거운 원자들의 밀집층을 만드는 방법을 밝힌 것 등이 그것이다. 집적회로의 개발·발전은 고체물리학 연구에 대한 엄청난 투자와 이로 인한 반도체 기술 및 물리학 기구·장비의 놀라운 발전을 낳았다. 더구나 집적회로의 지속적인 경량화는 물성물리학의 한계와 문제들을 해결하고 정보통신기술을 발전시키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킬비는 나아가 마이크로칩 기술을 군사·산업·상업 용도로 응용하는 데 선구적인 역할을 했다. 집적회로를 이용한 최초의 방위체계와 컴퓨터를 설계·제작하는 일을 주도하고 휴대용 단말기 제작에 응용된 소형 계산기의 개발에도 참여했다. 이후 1970년 텍사스인스트러먼츠사를 떠나 독립적인 발명가로 활동하며 실리콘 기술을 활용한 태양열발전을 연구했으며, 1978~84년 텍사스대학교에서 전자공학 교수로 일했다.

그는 미국과학훈장(1970)을 받고 미국 발명가 명예의 전당(1982)에 오른 데 이어 집적회로 개발 30주년인 1988년에는 자신이 몸담았던 텍사스인스트러먼츠사 연구소 부지가 주립 기념지로 지정되는 등의 영예를 두루 얻었으나, 세계가 그에게 보낸 찬사는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새 천년의 첫 노벨 물리학상(2000)이 집적회로를 개발한 그에게 주어진 것이다. 그는 초고속 일렉트로닉스와 옵토일렉트로닉스(opto-electronics)에서 사용되는 반도체 이종(異種)접합구조의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이 상을 공동수상한 조레스 알페로프, 허버트 크뢰머와 이 상의 영광을 함께 나눠 가졌다.

그는 현재 전기·전자공학학회(IEEE) 연구원이자 미국 공학아카데미(NAE) 회원으로서 60개가 넘는 미국 발명특허를 갖고 있으며, 비록 현역에서는 은퇴했지만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각 기업과 정부의 자문에 응하고 몇몇 회사의 사외이사로 참여하면서 사회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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