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joungul.co.kr 에서
제공하는 좋은글 입니다.
바쁜 일상 속에 잠시 쉬어가는 공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
|
|
|  | 우드워드 |  | |
| 미국의 화학자.
퀴닌(1944), 콜레스테롤과 코르티손(1951), 비타민 B12(1971) 등 복잡한 유기화합물을 합성한 것으로 유명하며, 1965년 노벨 화학상을 받았다.
교육과 초기 경력
그는 어린 나이에 화학에 매료되어 1933년 매사추세츠공과대학에 들어갔다. 다른 과목은 뒷전으로 한 채 화학에만 전념하다 한 학기 정학을 당하기도 했지만 그동안 공동연구로 3편의 연구논문을 썼다. 1936년 학사학위, 이듬해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곧 하버드대학교 조교로부터 시작해 교수(1950~60)와 도너좌 과학교수(1960~79)를 지냈다. 1963년 시바제약회사가 그에게 스위스 바젤에 우드워드 연구소를 설립해주는 전례없는 영광을 받았다. 그후 그는 케임브리지와 바젤에서 연구활동을 했다. 1938년 이리야 풀먼과 결혼했고, 1946년 유덕시애 멀러와 재혼하여 1남 3녀를 두었다.
그는 천연물에 대한 화학을 토대로 유기화학 전반에 걸쳐 연구를 했다. 이것에 관한 첫번째 결과는 스테로이드 분야에 관한 연구를 토대로 자외선 스펙트럼과 분자구조의 상호 연관 법칙을 서술한 일련의 4편의 논문이다(1940~42). 그는 일찍이 구조적 특성을 밝히는 데 물리적 측정이 화학반응보다 더 유용하다는 사실을 깨달아 법칙을 만들었다(우드워드 법칙). 제2차 세계대전중 페니실린의 구조를 밝히고자 영국과 미국에서 했던 광범위한 연구는 분광학적으로 페니실린 구조를 측정하여 명확해지기 전까지는 잘못된 화학 작용에 바탕을 둔 그릇된 추론을 토대로 하고 있었다. 그는 1945년에 이 연구를 구조에 대한 최종 추론과 연관시켰으며, 그후 20년간 구조를 결정하는 문제를 비교적 단순한 과정으로 줄이는 몇 가지 분광학 기술을 개발하는 데 최고의 자리를 지켰다.
구조 결정 분야에 있어서 그의 업적은 몇 가지 특수한 문제에 대해 단순히 해결책을 제시한 것 이상이었다. 즉 그의 업적은 새로운 접근법과 다른 분야의 길잡이가 되고 그 분야의 능력을 증가시킨 추론을 실증하는 것이었다. 그가 그 구조를 밝혀낸 복잡한 천연 물질은 페니실린(1945)·파툴린(1948)·스트리크닌(1947)·옥시테트라시클린(1952)·세빈(1954)·카르보마이신(1956)·글리오톡신(1958)·엘립티신(1959)·칼리칸틴(1960)·올린도마이신(1960)·스트렙토니그린(1963)·테트로도톡신(1964) 등이 있다. 그는 마그너마이신의 구조를 밝히는 과정에서 그 전까지는 잘 알려지지 않았던 마크로리드라는 새로운 천연 항생물질 계열을 찾아냈으며, 또한 천연에서 그것이 생성되는 방식을 제안했다. 그는 또한 생체 내에서 스테로이드 호르몬이 생합성되는 정확한 과정을 최초로 제시했다. 현대 유기합성의 아버지로 널리 불리는 그는 복잡한 분자를 가장 잘 합성하는 대가였다. 1944년 퀴닌 합성을 시작할 때 그는 화학반응 메커니즘을 잘 이해해야 실험실에서 복잡한 화합물을 합성하기 위한 일련의 반응을 설계할 수 있고 성공적으로 합성할 수 있음을 입증했다. 주로 그로부터 시작된 필수적인 지적 훈련은 실로 유기화학에서 이루어진 중요한 노력이었다.
스테로이드 합성
퀴닌 합성에 이어 그는 최초로 작은 화합물로부터 스테로이드의 일종인 콜레스테롤과 코르티손(1951) 및 이와 관련이 있는 테르펜 라노스테롤(1951)의 합성에 착수하여 처음으로 완전합성(어떤 화합물을 원소 또는 아주 간단한 물질로부터 합성하는 것)을 했다. 1954년에 스트리크닌과 리세르그산의 합성을 발표했으며 이어서 1956년에는 정밀 기술의 본보기이자 레세르핀의 상업적 생산에 이용되는 레세르핀 합성법을 개발했다. 계속해서 클로로필(1960), 테트라시클린(1962), 콜히친(1963), 세팔로스포린 C(1965) 등을 합성했다. 취리히에 있는 연방 기술연구소의 알브레히트 에센모제르(십여 년 이상을 두 연구소의 100여 명의 연구원과 함께)와 공동 연구하여 1971년에 복잡한 조효소인 비타민 B12(시아노코발라민)의 100여 개 이상의 단계반응을 거치는 합성 과정을 완성했다. 이것은 화학합성에 있어서 실로 전례가 없는 대규모의 활동이 집중된 기념비적인 업적이다. 비타민 B12에 관한 연구를 통해서 그는 로알트 호프만과 함께 광범위한 기본 반응들을 설명하는 궤도함수 대칭성 보존의 개념(1960년대 유기화학에서 이루어진 가장 중요한 이론적 진보)을 인식하고 법칙으로 만들었다. 그는 죽기 직전까지 에리트로마이신의 합성에 관해 연구하고 있었다.
그의 연구는 당시 늘 화학적 사고의 중심이었으며 그가 다른 유기화학자에게 미친 영향은 그 누구보다도 컸다. 그는 많은 영광스러운 지위를 받았으며 여러 번 영예로운 강단에 섰다. 그는 왕립학회의 데이비 메달(1959, 영국), 피오 11세 금메달(1961, 바티칸 교황 과학 아카데미), 국립 과학메달(1964, 미국), 교쿠지쓰쇼[旭日章](1970, 일본), 노벨 화학상(1965)을 비롯하여 많은 메달과 상을 받았다. 그는 워싱턴 D. C.국립 과학 아카데미, 런던 왕립학회의 회원이었으며 여러 나라의 많은 과학학회의 명예회원 또는 회원이었다.
by http://preview.britannica.co.kr/spotlights/nobel/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