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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말 파샤(1881-1938)
터어키의 군인. 정치가. 터어키 공화국의 초대 대통령(1923-1938). 그리스의 살로니카 출생. 청년기에 직접 군인으로서의 교육을 받아 이스탄불 육군 대학에 들어갔는데, 애국 학생 운동에 참가하였기 때문에 졸업 직전에 시리아의 다마스커스의 기병 연대로 좌천되었다. 그러나 계속하여 새로운 혁명 단체의 조직을 기도하여 1908년에는 그 때 일어난 청년 터어키 당의 혁명을 지지하였다. 그는 철저한 입헌제를 주장하여 군대의 정치 개입을 배격했기 때문에 청년 터어키당과는 의견이 맞지 않았다. 1911년의 이탈리아의 트리폴리 전쟁, 이듬해 발칸 전쟁에서는 용명을 떨쳐, 전후 불가리아의 소피아 대사관 무관이 되었다.제 1차 세계 대전에는 다아다넬즈 해협 지대의 겔리볼루에 상륙한 영,프 연합군을 격파(1915.8), 대령으로 진급하였다. 대전의 결과 터어키가 세브르 조약을 강요당하여 그 영토가 대폭 줄어든 데다, 그리스가 영국의 뒷받침으로 이즈미르 지방에 침입하자 그는 농민과 자본가의 후원을 받아 [애나토울리아 루멜리아 권리 옹호단]을 조직, 1920년 4월 앙카라에 대국민회의를 열어 술탄,칼리프 정부를 부인하고, 소련의 성원을 얻어 그리스군을 사카리아에서 격파했다. 이리하여 로잔 조약을 체결하고 터어키 공화국을 설립하여, 그 뒤 3히에 걸쳐 대통령에 선출되었다. 1934년 의회는 [아타튀르크(터어키인의 아버지라는 뜻)]의 칭호를 그에게 보냈는데 그 때까지는 케말 파샤의 이름으로 통하고 있었다. 1938년 대통령 재직 중에 사망하였다. 그가 대통령, 국민 회의 의장, 최고 군사령관, 국민당 당수로 독재적 권력을 휘두른 공화국 정부는 정교 분리, 남녀 동등권의 실행, 서유럽 형식의 입법, 터어키 로마자의 채용 등으로써 터어키의 근대화에 지대한 업적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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