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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타비아누스 (아우구스투스:B.C.63-A.D.14)
로마의 정치가,황제. 서민의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모친은 케사르의 누이,율리아의 딸 아티아이다. 부친의 사후에 케사르의 보호를 받았는데, 케사르가 암살된 뒤 그의 유서에서 그 자신이 그의 양자 및 후계자로 지명되어 있음을 알고 가이우스 율리우스 케사르 옥타비아누스로 개명하였다. 암살 당시 외유 중이었던 그는 급히 귀국하여 양부의 유산으로 군대를 모아 로마에 진군,원로원으로 하여금 자신의 콘술 취임과 개선식의 거행을 승인시켰다. B.C.43년 안토니우스 및 레피두스와 더불어 제2차 삼두정치를 수립하고, 반대파의 원로원 의원 300명, 기사 300명을 추방한 후 안토니우스와 협력하여 케사르의 암살자 브루투스,캇시우스를 패사시켰다. 한편,B.C.31년 악티움 해전에서 승리한 후, 안토니우스와 이집트 여왕 클레오파트라를 멸망시켜 전 제국의 지배자가 되었다. 내정에 있어서는, 전통을 존중하고 도덕의 고양,사치 생활의 억제,군기의 확립에 주력하였고 예술가.시인.역사가.법학자등을 원조하여 로마의 위대성을 가져오게 한 로마의 과거를 묘사시킴으로써 국민의 자각을 촉구했다. 이리하여 그에 의해 [로마의 평화]는 확립되고 그에 대한 국민의 존경이 집중되자,아우구스투스(존엄한,위대한의 뜻)라는 존호를 바쳤고, 동방에서는 황제 숭배가 일어나 그와 {여신 로마}를 위해 신전을 건립하기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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