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joungul.co.kr 에서
제공하는 좋은글 입니다.
바쁜 일상 속에 잠시 쉬어가는 공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
|
|
|  | 카이사르 (케사르,100?-44 B.C.) |  | |
| 로마 공화정 말기의 장군, 정치가. 인척 관계 때문에 평민파에 속하여, 원로파의 술라의 전성시대에 박해를 피하려고 소아시아 등지를 전전하고 돌아다녔는데, 소아시아에서 군대에 복무하던 중 술라의 죽음을 듣고 로마로 돌아와 정치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B.C.60년 크랏수스, 폼페이우스와 같이 제1차 삼두정치를 행하고,B.C.54년 케사르의 딸이며 폼페이우스의 처인 율리아가 죽고 B.C.53년 크랏수스가 동방에서 전사하자 케사르와 폼페이우스의 대립이 현저해졌다. 자신의 위험을 직감한 케사르는 속주(屬州)에서 군대지휘권을 보유한 채로 집정관에 입후보할 것을 요구했으나 받아들여 지지 않자 B.C.49년 1월 7일 저 유명한 [주사위는 던져졌다]라는 말과 함께 루비콘 강을 건너,이탈리아로 진격하여 폼페이우스를 격파했다. 이윽고 이집트에 개입하여 클레오파트라를 사랑하고,이집트의 왕위에 앉혔으며,그 후 폼페이우스의 잔당을 격파하고 로마에 개선하여 천하 통일의 사업을 완수했다. B.C.44년 왕위의 확립을 암시하는 예언이 발견되어 의구심이 커지는 도중, 3월 15일 브루투스,캇시우스 등의 공화파의 사람들에 의하여 케사르는 폼페이우스가 세운 의사당 안,폼페이우스의 동상 밑에서 암살되었다. 그러나 독재 정치 가운데서도, 곡물 분배 수익자의 제한, 빈민.노병의 해외에서의 식민,배심 제도의 개정,태양력의 제정등 대사업을 이룩했으나, 원로원파의 실력을 과소 평가한 것이 실패의 원인이 되었다.
by http://social.netian.com/human.htm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