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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관
윤관은 고려 중기에 윤집형의 아들로 태어났다. 문종 때 과거에 급제하고, 숙종 때 추밀원 지사 , 한림학사 등을 지냈다. 1095년 윤관은 임의와 함께 사신으로 요나라에 가서 숙종이 왕위에 올랐음을 알리고 돌아왔고, 3년 뒤에는 조규와 함께 송나라 사신으로 가서 마찬가지로 숙종의 즉위를 알렸다.
윤관은 1104년(숙종9) 동북면 행영병마도통이 되어 여진족의 정벌에 나섰다. 이때 여진족 가운데 새롭게 일어난 완안부족이 크게 힘을 길러 고려 땅인 함흥 부근까지 쳐들어 왔다. 숙종은 여진족을 정벌하고자 임간을 시켜 물리치게 했으나 고려군은 여진군에게 크게 패하고 말았다.
이어 윤관이 여진을 정벌하기 위해 군사를 이끌고 나갔다. 그러나 윤관이 이끄는 고려군도 여진족에게 크게 패하고 말았다. 고려군은 보병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여진족은 말을 탄 기병으로 구성되어 있어 고려군보다 기동력이 빨랐던 것이다.
윤관은 이 일을 교훈 삼아 숙종에게 건의하여 ´별무반´이라는 특수 군대를 만들어 고려군을 빠르고 강한 기병 부대로 길렀다. 1107년(예종3) 여진족이 다시 국경을 침략하려는 움직임이 보이자 윤관은 원수로 임명되어 부원수 오연총과 함께 별무반을 포함하여 군사 17만 대군을 이끌고 정벌에 나섰다.
윤관은 새로 훈련시킨 별무반과 뛰어난 전술로 여진족을 물리쳐 135개의 마을을 점령하여 영토를 개척했다. 이어 1108년 함주, 영주, 웅주, 복주, 길주, 공험진, 숭녕진, 통태진, 진양진 등 아홉 곳에 9성을 쌓았다. 또한 남쪽 지방의 사람들을 그곳으로 이주시켜 농사를 짓게 하였다. 그 이듬해에는 두만강 건너에 고려 정계비를 세워 국경으로 삼았다.
그러나 삶의 터전을 잃은 여진족은 그 뒤로 여러 차례 침략해 왔고 자신들의 생활의 터전인 9성을 돌려 주면 다시는 침략을 하지 않겠다고 간청해 왔다. 이에 고려는 여진족의 간청과 9성이 너무 멀어 관리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9성을 돌려 주었다.
여진족에게 9성을 되돌려 주자 윤관은 여진족 정벌에 실패했다는 추궁을 받아 벼슬을 박탈당했다. 또한 이익 없는 전쟁으로 국력을 낭비했다 하여 처벌해야 한다는 끊임없는 탄핵을 받아, 개경으로 돌아와 왕에게 보고도 하지 못한 채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러나 윤관을 아낀 예종은 재상과 신하들의 탄핵을 물리치고 1110년 윤관에게 수태보 문하시중 판병부사 상주국 감수국사라는 벼슬을 다시 내렸다. 하지만 윤관은 벼슬을 사양하고 고향인 파평(경기도 파주)에서 조용히 지내다 1111년 세상을 떠

by http://fori.new21.net/history/main.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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