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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민왕 |  | |
| 공민왕은 고려의 제31대 왕으로, 1330년 충숙왕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12세 때 원나라에 볼모로 건너 갔다. 고려는 1231년부터 여섯 차례에 걸쳐 몽골의 침입을 받아 사력을 다해 싸웠으나 1259년 몽골에 항복하고 말았다. 몽골에 굴복한 고려는 해마다 많은 재물과 처녀들을 원나라에 바쳐야만 했다. 그뿐만 아니라 왕자들마저 볼모로 잡혀가 원나라에서 생활해야 했다.
공민왕은 원나라에 볼모로 있으면서 약소국의 슬픔을 뼈저리게 느끼고, 고려를 자주국으로 만들어야겠다는 굳은 결심을 하였다. 그리고 부지런히 글을 익히고 열심히 새로운 문물을 배웠다. 공민왕은 1351년에 충정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다. 원나라의 힘이 약해지자 공민왕은 원나라 배척 운동을 일으켰다. 먼저 변발, 호복 등 고려 귀족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있는 몽골의 풍습을 금지했다. 또 몽골의 연호와 관제를 없애고, 문종 때의 관제를 다시 실시했다.
공민왕은 원나라 황실과 인척을 맺고 횡포를 부리던 기철 일족을 쫓아내고, 원나라에 빼았겼던 우리 땅을 되찾았다.
1368년 중국에 명나라가 건국되자, 공민왕은 이인임을 보내 명나라와 힘을 합쳐 요동에 남아 있는 원나라 세력을 무너뜨렸다. 또한 이성계에게 동녕부를 치게 하고, 오로 산성을 빼앗아 나라의 힘을 과시하였다. 그런가 하면 안으로 무신들이 개인적으로 병사를 갖지 못하게 했고, 승려 신돈을 등용하여 귀족들의 세력을 약화시키는 등 왕권을 강화했다.
그러나 홍건적과 왜구의 잦은 침략으로 나라의 형편은 점점 어려워졌다. 또 이 무렵 왕비인 노국공주가 병으로 죽자 왕비를 너무나 사랑하던 공민왕은 실의에 빠졌다.
공민왕은 나라일을 신돈에게 맡긴 채 불공과 그림 그리기, 독서에만 몰두하였다.
신돈은 처음에는 나라일을 열심히 돌보았다. 그러나 공민왕의 신임을 믿고 권력을 함부로 휘두르며 차츰 나라일을 그르치기 시작했다. 나라의 기강이 해이해지자 신하들은 공민왕 몰래 많은 부정을 저질렀다. 결국, 공민왕은 1374년 자신들의 부정이 드러날까 봐 두려워한 일부 신하들에게 목숨을 잃었다.
공민왕은 그림과 글씨에도 뛰어나<천산대렵도> 등 많은 작품을 남겼다.
공민왕은 80여 년 간 지속된 원나라의 간섭을 물리치고, 개혁 정치를 통해 고려의 중흥을 꾀하고 자주 국가를 세우려고 노력한 왕이었다.
by http://fori.new21.net/history/main.ht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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