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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견훤 |  | |
| 견훤은 867년(경문왕7) 경상북도 상주(문경) 가은현에서 이아자개의 큰아들로 태어났다. 견훤은 자라면서 풍채와 용모가 남달리 뛰어났다. 881년(헌강왕7) 열다섯살이 되던 해에 자신의 성을 이씨에서 견씨로 고치고, 큰 포부를 펼치기 위해 서울인 경주로 올라가 군대에 들어갔다. 그리고 서남해 지방에 나타나는 왜구들을 크게 물리치고 그 공으로 서남해 변방비장이 되었다.
그 당시 신라는 매우 혼란스러웠다. 왕실의 권위는 땅에 떨어졌고, 왕족들은 나라일을 내
팽개친 채 서로 왕권을 차지하려고 다툼을 벌였다. 귀족들도 욕심을 채우느라 바빴다
특히, 진성여왕이 즉위하면서 왕실과 귀족들의 횡포가 더욱 심해지고 흉년이 계속 들어 나라 곳곳에서 백성들의 민란이 자주 발생하였다.
견훤은 나라가 혼란스러운 틈을 타서 경주의 서남쪽에 있는 주현을 공격하여 세력을 키워 나갔다. 862년(진성여왕6)에는 신라 조정에 반기를 들고, 옛 백제의 영토였던 무진주(광주)를 점령하여 왕위에 올랐다. 이어 900년(효공왕 4)에는 완산주(전주)에 도읍을 정하여 스스로 왕이라 칭하고 나라 이름을 ´후백제´라 하였다.
후백제를 세운 견훤은 나라의 제도와 관직을 정비하고, 중국에 사신을 보내어 외교 관계를 맺었다. 그리고 궁예가 세운 후고구려와 자주 싸움을 벌여 세력을 넓혀 나갔다. 918년에 왕건이 궁예를 몰아내고 고려를 세우자, 견훤은 고려와 인질을 교환하면서 겉으로는 평화롭게 지냈다. 그러나 고려에 인질로 보낸 조카가 병으로 죽자 고려를 공격하였다. 또 927년에는 신라의 경주로 쳐들어가 포석정에서 놀고 있던 경애왕을 죽이고, 신라의 새로운 왕으로 경순왕을 내세우는 등 후백제의 위력을 과시했다.그러나 견훤은 930년에 고려 왕건의 군대와 맞붙은 고창(안동) 싸움에서 크게 패하면서 점차 힘을 잃어갔다. 이때 견훤의 뛰어난 부하들 대부분이 고려에 항복했고, 이후 웅진(공주) 이북에 있는 후백제의 성 30개가 고려에 넘어가 막강하던 후백제는 세력이 약해지기 시작했다.견훤은 넷째 아들 금강에 왕위를 물려주려고 했다. 그러나 맏아들 신검이 이에 불만을 품고 935년 반란을 일어켰다. 이때 견훤은 신검에 의해 금산사에 갇혔는데, 가까스로 금산사를 탈출하여 왕건에게 항복하였다. 그리고 이듬해인 936년 왕건에게 후백제를 칠 것을 요청해 후백제를 멸망시킨 뒤 황산(연산)에 있는 절에서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by http://fori.new21.net/history/main.ht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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