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좋은글 나누기
joungul.co.kr 에서 제공하는 좋은글 입니다.
바쁜 일상 속에 잠시 쉬어가는 공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김만중(金萬重, 1637~1692)
▶ 본관은 광산, 자는 중숙, 호는 서포, 시호는 문효이다. 1665년(현종 6)에 정시문과의 장원으로 급제하여 정언·지평·수찬·교리를 지내고, 1671년(현종 12)에 암행어사가 되어 경기·삼남의 진정(賑政)을 조사하였다. 이듬해에는 겸문학·헌납을 역임하고 동부승지가 되었으나 1674년(현종 15)에 인선왕후가 작고하여 자의대비의 복상문제로 서인이 패하자, 관직을 삭탈당하였다.

▶ 그 뒤, 1679년(숙종 5)에는 예조참의를, 1683년(숙종 9)에는 공조판서를 역임하고, 이어 대사헌에 올랐으나 곧 탄핵을 받아 전직되었다. 그리고 1685년(숙종 11)에는 홍문관대제학을, 이듬해에는 지경연사를 지냈으나, 다시 선천으로 유배당하였다가 1688년(숙종 14)에 방환되었다. 그러나 이듬해에 다시 박진규·이윤수 등의 탄핵을 받아 남해로 유배를 가서 소설 『구운몽』을 집필하고 병으로 죽었다.

▶ 『구운몽』은 그의 어머니를 위로하기 위해 쓴 것으로 전문을 한글로 집필하여 숙종 때 소설문학의 선구자가 되었다. 그는 한글로 쓴 문학이라야 진정한 국문학이라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1698년(숙종 24)에 관직이 복구되었고, 1706년(숙종 32)에는 효행에 대한 정표를 받기도 하였다. 저서로는 『구운몽』과 『사씨남정기』, 『서포만필』, 『서포집』, 『고시선』 등이 있다.


by http://www.coreaking.com/4sub/humindex.htm
 
비즈폼
Copyright (c) 2000-2025 by bizforms.co.kr All rights reserved.
고객센터 1588-8443. 오전9:30~12:30, 오후13:30~17:30 전화상담예약 원격지원요청
전화전 클릭
클린사이트 선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