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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헌(金尙憲, 1570-1652)
▶ 본관 안동. 자 숙도(叔度). 호 청음(淸陰)·석실산인(石室山人). 1596년(선조 29) 문과에 급제하여 예조좌랑·시강원사서·이조좌랑·홍문관수찬 등을 역임하였다.

▶ 1611년(광해군 3) 이황·이언적을 비난하는 정인홍을 공격한 바 있는 그는 폐모론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입장을 보였다. 그리고 광해군 말년에 부모상을 연이어 당하면서 관직을 떠나 있었던 그는, 인조반정 이후 다시 대사간·이조참의·도승지 등에 임명되었다.

▶ 정묘호란 때 명나라에 진주사로 갔던 그는 후금과의 화의를 끊고 강홍립의 관작 복구를 반대하였다. 또한 그는 인조의 부친에 대한 추숭을 반대하면서 반정공신 이귀와 의견 충돌을 빚고 낙향하였다. 1633년(인조 11)부터 대사헌에 역임하면서 출사와 사직을 반복하던 그는 1633년 병자호란이 일어났을 때 예조판서로 있으면서 남한산성으로 인조를 호종하였다. 이때, 선전후화론(先戰後和論)을 주장한 그는 대세가 기울어 항복하는 쪽으로 굳어지자 최명길이 작성한 항복문서를 찢고 통곡하였다. 그리고 항복한 뒤에는 자결을 기도하다가 실패하고, 안동의 학가산에 들어가 두문불출하였다.

▶ 그러나 1641년(인조 19) 위험인물로 지목한 청나라에 의해 심양으로 잡혀가 4년 동안 억류되었다. 1645년(인조 23) 소현세자와 함께 귀국한 그는 벼슬을 단념하고 은거하였다가 효종이 즉위한 뒤 좌의정을 역임하였다. 그는 죽은 뒤 대표적인 척화신으로 추앙을 받았으며, 1661년(현종 2) 효종의 묘정에 배향되었다. 저서로는 『조천진장』·『야인담록』·『독례수초』·『남사록』 등이 있으며, 뒷날 그의 문집으로 『청음집』이 간행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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