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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세붕(周世鵬, 1495~1554)
▶ 조선전기의 문신이며, 학자. 자는 경유(景游)로 호는 신재(愼齋)·남고(南皐)·무릉도인(武陵道人)이며, 본관은 상주로 칠원 출신이다. 선대에는 모두 관직에 나가지 않았으나, 주세붕의 현달로 증직되었다. 1522년(중종 17)에 문과에 급제하여 관직을 시작했으며, 대체로 홍문관(弘文館)·성균관(成均館)등 학문기관의 관직을 맡았다.

▶ 1541년 풍기군수(豊基郡守)로 나가 이듬해 백운동(白雲洞:順興)에 안향(安珦)의 사당 회헌사(晦軒祠)를 세우고, 1543년 주자(朱子)의 백록동학규(白鹿洞學規)를 본받아 사림자제들의 교육기관으로 백운동서원(白雲洞書院:紹修書院)을 세워 서원의 시초를 이루었다. 그리고 서원을 통하여 사림을 교육하고 또한 사림의 중심기구로 삼아 향촌의 풍속을 교화하려는 목적으로, 재정을 확보하고 서원에서 유생들과 강론(講論)하는 등 열성을 보였다. 처음에는 사림의 호응을 받지 못하다가 이황(李滉)의 건의로 소수서원(紹修書院)(관련유적참조)의 사액(賜額)을 받고 공인된 교육기관이 된 뒤 풍기사림의 중심기구로 자리잡았다. 그 후 이를 모방한 서원들이 각지에 건립되었다.

▶ 직제학·도승지·대사성·호조참판을 역임하고, 1551년 황해도관찰사 때 해주(海州)에 수양서원(首陽書院:文憲書院)을 세워 최충(崔只)을 제향하였다. 재차 대사성·성균관동지사(成均館同知事)를 지내고 중추부동지사(中樞府同知事)에 이르렀다. 도학에 힘쓸 것을 주장하고 불교의 폐단을 지적했으며, 기묘사화(己卯士禍)이후 폐지되었던 여씨향약(呂氏鄕約)을 다시 시행할 것을 건의하기도 했다.〈도동곡(道東曲)〉·〈육현가(六賢歌)〉·〈엄연곡(儼然曲)〉·〈태평곡(太平曲)〉등의 장가(長歌)와 〈군자가(君子歌)〉등 단가 8수가 전한다.

▶ 청백리에 녹선되고, 예조판서에 추증되었다. 칠원의 덕연서원(德淵書院)에 배향되고, 백운동 서원에도 배향되었다. 저서에 『무릉잡고(武陵雜稿)』, 편서로는 『죽계지(竹溪誌)』·『동국명신언행록(東國名臣言行錄)』·『심도이훈(心圖彛訓)』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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