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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안의 칼로 그대를 베어 가을을 열다
어두운 밤 하늘에는 별이 있고
햇빛 따스한 들에는 꽃이 있고
내 안에는 칼을 하나 품고 있었는데
아무도 그걸 몰랐나 보다 왜 몰랐을까
아주 오래 되어 칼날이 무뎌지고
나무 손잡이도 삭아 다 떨어져나간
이제 그 무엇도 벨 수 없는 나의 칼을 꺼낸다
허공을 스윽 한 번 베어본다
무딘 칼에 갑자기 스쳐서인지
상처난 하늘이 캄캄해지고
아프다고 소리치며 소나기가 꽃을 뚫는다
새벽에 일어나 창가에 선 그대가
나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싶다고 말을 한다
그리고 나서 그대는 나는 이제
사랑의 끝을 보고 싶다고 말을 한다
그리고 나서 그대는 나는 이제
사랑을 다시 시작하고 싶다고 말을 한다
나는 칼을 들어 그대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푸른 빛으로 베어버린다
그대의 몸에서 눈부시게 드러나는 가을
그대가 흘린 피는 너무나도 흰 구름이다
그대의 숨이 끊어지는 순간
나무도 숲도 산도 그리고
주위의 사물도 나도 멈춰서서 눈을 감는다
가을이 감춰둔 칼에 찔려 모두 죽는 것이다
가을이 보여준 푸른 빛에 모두 감전되는 것이다
저 가을 나보다 더 날카로운
칼을 가지고 있었구나
저 가을 나보다 더
깊은 빛을 가지고 있었구나
내안의 칼로 그대를 베어 가을을 열어보니
별이 떨어지고 꽃이 떨어지고
나도 내안에서 떨어져 숨을 죽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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