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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훈 ( 1864 - 1930 )
독립운동가이자 교육자였으며, 승훈은 자이고 이름은 인환이었다. 평북 정주에서
가난한 선비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려서 한문을 배우고, 16세 때에 생활이 어려워
점원으로 일하기도 했으나 그 뒤 많은 재산을 모았다. 1907년에 안창호의 강연을
듣고 감동하여 자신의 재산을 팔아 오산학교를 세워 학생들에게 새로운 학문과
애국 사상을 일깨웠다. 1911년 신민회 사건으로 제주도에 귀양가 있었으며, 그해
105인 사건의 관련자로 잡혀 옥살이를 치르고 난 뒤 평양 신학교에 들어가 신학
을 공부하여 목사가 되었다.


1919년 2월에 서울에서 독립운동을 준비하던 지사들과 연락을
취하고 서북 지방을 중심으로 한 기독교 계통의 참여를 책임지
고 활동하였다. 3·1운동 때에는 민족 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체포되어 다시 옥살이를 하였고, 감옥에서 나온 뒤 <동아일보>
사장에 취임하여 물산장려 운동(서울의 조선 청년 연합회를 중심
으로 국산품 애용과 민족 기업 육성 등을 내걸고 강연회와 시위
선전 등을 벌인 운동)과 민족 대학 설립을 추진하였다. 그 후 오
산 학교로 돌아가 학교 운영에 심혈을 기울였다. 66 세로 세상을
떠나자 사회장으로 장례가 치러지고 오산에 안장되었다. 1962
년에 건국 훈장 대한민국장이 주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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