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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궁억 ( 1863 - 1939 ) |  | |
| 생애와 업적
독립 운동가이자 교육자, 언론인으로서 서울에서 태어나 재동의 관립 영어 학교를
졸업했다. 고종의 어전 통역, 경북 칠곡 부사, 궁내부 토목국장 등을 지냈다. 1896
년 <독립신문>에 참여하였고, 독립 협회의 수석 총무로 활동하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옥살이를 하였다. <황성신문>사 초대 사장으로 언론 활동에 종사
하면서 러시아와 일본을 비판하는 글을 썼다.
1910년에 배화 여학교에서 9년간 영어를 가르치다가 강원도 홍천으로 내려가 학교를 세우고 교육에
전념하였다. 1933년 국민들의 민족 정신을 일깨우기 위해 나라 꽃으로 정한 무궁화를 전국적으로 퍼
뜨려 이른바 ´무궁화 사건´ 을 일으켰다. 저서로 <조선 이야기> <동사략> 등이 있다.
우리의 웃음은 따뜻한 봄바람 / 봄바람 만난 무궁화 동산
우리의 눈알이 떨어질 때마다 / 또다시 살아나는 이천만
빛나거라 삼천리 무궁화 동산 / 잘 살아라 이천만의 고려족
백화가 만발한 무궁화 동산에 / 비밀리 노래하는 동무야
백천만 화초가 웃는 것같이 / 즐거워하자 우리 이천만…….
여러 사람이 모여 부르는 ´무궁화 동산´ 이란 이 노래는 마을 어린이들까지도 어깨동무를 하며 부르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옥살이로 나빠진 건강을 회복하기 강원도 홍천 시골로 내려간 남궁억이 만들어
학생들에게 부르게 한 노래였으며, 이것은 무궁화와 함께 시작한 커다란 애국운동이었다.
무궁화로 나라 사랑하는 정신을 일깨워주자는 그의 굳은 신념이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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