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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효 ( 1861 - 1939 )
조선 말기의 정치가, 호는 춘고. 1872년 13세 때 철종의 딸 영혜 옹주와 결혼하여
금릉위가 되었고, 북학파의 학맥을 이은 개화 사상가들의 영향을 받아 1879년경
김옥균·홍영식·서광범 등 개화파 요인들과 힘을 합쳐 정치적 혁신을 부르짖고 일
본의 세력을 이용하여 청나라의 간섭과 러시아의 침투를 억제하는 데 주력하였다.
1882년에 수신사로 민영익 등과 일본을 시찰하고 돌아와 개화 정책을 펼치려
하였으나, 보수파의 집권으로 실패하였다.


이에 한성부 판윤으로서 김옥균·홍영식 등과 개화당을 조직하고, 갑신정변을 일으켜 보수파를 제거
하고 정권을 장악하였다. 그러나 청나라의 개입으로 3일 만에 실패하고 역적으로 몰려 일본으로
망명하였다. 그 뒤 돌아와 김홍집 내각의 내무 대신으로 있으면서 자주적 개혁을 꾀하였으나 반역
음모 사건으로 또다시 일본으로 망명하였다. 1907년에 다시 돌아와 이완용 내각의 궁내부 대신에 임명
되었다가 대신 암살 음모 사건으로 제주도에서 1년 동안 귀양살이를 하였다. 1910년 이후 일제가
회유 정책으로 준 후작의 작위를 받았으며, 뒤에 중추원 고문을 지냈다.
1920년 <동아일보>의 초대 사장에 취임하였다. 저서로 ´사화기략´ 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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