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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익현 ( 1833 - 1906 )
조선 말기의 문신, 학자, 의병장. 호는 면암 경기도 포천에서 태어나 1855년 문과
에 급제하여 장령이라는 벼슬에 올랐다. 흥선대원군의 정책을 비판하여 여러
차례 귀양살이를 하였고, 그 뒤 단발령 (조선 고종 32년에 상투를 없애고 머리를
짧게 깎도록 한 명령)에 반대하여 다시 옥살이를 하였다. 1898년 경기도 관찰사
등의 벼슬이 내려졌으나 거절하고 후진 교육에 힘썼다. 1905년에 을사조약이
맺어지자 이듬해에 전라도에서 의병을 일으켜 일본군과 맞서 싸우다가 체포되
어 쓰시마 섬으로 끌려간 뒤, 일본이 주는 음식은 먹을 수 없다 하여 단식하다가
세상을 떠난다. 저서로는 <면암집>이 있으며, 1962년에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주어졌다.


1906년 의병을 일으킨 최익현은 체포되어 임병찬, 유준근 등과 함께 대마도로 귀양을 가게 되었다.
최익현은 단식으로 일제에 항거하면서 물 한 모금 마시지 않았다. 제자들이 눈물로 하소연했다.
˝ 선생님, 이렇게 돌아가시면 나라의 앞날은 어찌합니까 ? 잡수시고 기운을 차려야 저들과
대항해서 싸울 수 있지 않겠습니까 ? ˝
˝ 내 늙은 몸으로 어찌 원수의 밥을 먹고 더 살기를 바라겠느냐 ? 너희들이나 살아 돌아가서
나라를 구하라. ˝
최익현은 끝내 일본의 음식을 거절하다가 대마도에서 한 많은 일생을 마치고 말았다. 그의 시체가
돌아올 때 수많은 동포들이 부산항에 나가 통곡하며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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