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좋은글 나누기
joungul.co.kr 에서 제공하는 좋은글 입니다.
바쁜 일상 속에 잠시 쉬어가는 공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수염난 여인
화장을 하는 여인의 얼굴에 수염이 난다

얼굴은 절망을 읽은 공간에 턱을 고이고
두려움 감추려는 듯 벽속으로 스며든다

스며든 얼굴이 벽의 베일(veil)을 치고
바깥에 있는,
모래시계 안에 갇힌 시간들을 응시한다

그것들은 투명한 전갈이 되어
제 살같은 모래를 집어 삼킨다

탈출을 위한 모진 삶의 노래가 시계 안에 가득하다

바라다 본 허공은 가슴이 뚫려 신음한다

그곳으로 부터 십자가가 흘린 피같은 햇빛이
수직으로 강하하고,
주름진 이마같은 지평선에선
눈 먼 불새가 기다란 눈썹 그리며 비상(飛上)한다

슬픔처럼 낮달이 하늘로 솟는다

달을 가리키던 손가락은 저 홀로 춤을 춘다

증발된 심우도(尋牛圖)가 남긴 소 울음소리만
비애의 장단을 흐느낌으로 맞추고 있다

소리가 일러준다

과거의 모든 성스러운 의식(儀式)은
더 이상
그녀의 얼굴에 머물러 주지 않는다고

이미, 신(神)마저
외로움으로 몸부림 치는 시각이 되었으므로
죽음은 전공간적으로 사치스러운 질병이 되고

결국, 그래서
모든 것은 살아남은 자의 몫이 되었다

그 피할 수 없는 시간들로
얼굴 가꾸는 여인은
이제
수염이 하나도 두렵지 않다



 
비즈폼
Copyright (c) 2000-2025 by bizforms.co.kr All rights reserved.
고객센터 1588-8443. 오전9:30~12:30, 오후13:30~17:30 전화상담예약 원격지원요청
전화전 클릭
클린사이트 선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