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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달려라
올해 초까지만 해도 내게 달리기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운동과 담을 쌓고 산데다 중고교시절 오래 달리기조차 한 번도 완주해본 적이 없는 내가 달리기라니...하지만 지금은 10km 대회를 완주한 경험이 있고 하프 마라톤을 뛰어보려고 계획하고 있다. 아직도 나는 1시간을 지속적으로 달리는 것이 힘들고 때로는 뛰는 시간보다 걷는 시간이 더 많다. 그래도 나는 주제넘게 스스로를 ´러너´라고 생각한다.

´천천히 달려라´는 문지방을 넘기가 망설여지는 순간부터 결승점을 통과하기까지 내가 달리면서 겪었던 모든 감정의 굴곡과 의식의 흐름을 내가 자각하는 것보다 더 깊고 세밀하게,게다가 유머러스하게 묘사해준 것 같은 책이었다. 꼭 달리기를 해본 사람이어야만 이 책을 제대로 읽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 책이 주는 가장 큰 선물은 달리기 그 자체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삶이 실패의 잔재들로 이뤄진 것 같은 절망감에 빠져본 사람들,´안된다´와 ´해야 한다´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사람들이라면,나처럼 이 책을 통해 자신을 들여다보는 경험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인생을 길에 은유한다면,그 길을 달리는 태도를 성찰한 이 책은 인생을 살아가는 태도를 쉬운 문체로 사유한 인문학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저자의 말대로 매번의 달리기가 늘 기쁘지 않다. 우연히 달리기를 시작한 뒤 나는 더 나아지지 않는 것에 노심초사했다. 늘 다른 사람과 나를 비교하며 인내심이 약한 스스로를 나무랐다. 변화에 대한 저항은 지금도 끈질기게 나를 유혹한다. 그러나 ´자신의 최상이면 된다´는 저자의 글을 반복해 읽으며,나는 내가 겪은 경험들을 돌이켜 생각해볼 기회를 갖게 됐다.

같은 코스를 같은 속도로 달려도 모든 달리기는 다 다르다. 삶에서와 마찬가지로 매번의 달리기는 좌절과 권태,절정과 기쁨의 순간을 고스란히 체험하게 한다. 그 어떤 체험도 영속되지 않으며, 내가 밟지 않은 앞길에는 지금보다 덜하지 않은 선물 혹은 함정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저자는 ´당신의 최악이 당신의 최상과 마찬가지로 순간에 불과하며 당신의 한계를 받아들이는 것이 자신을 해방시켜줄 행위´라고 말한다. 요는 ´과정의 인간´으로 사는 것이다. 저자의 말대로 ´기쁨은 달리는 행위에 있고,목적지가 아니라 여정에´ 있다.

올 봄 10km 대회를 완주했을 때가 내 딴에는 인생의 가장 힘든 고비를 넘고 있다고 생각하던 때였다. 처음엔 초조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의식 속에는 온전히 달리는 행위만 남게됐다.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에고와 집착을 버리고 공허와 터무니없는 기쁨, 더 큰 힘과의 조화속으로 내달렸다. 그 순간을 다시 체험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계속 달리는 일 밖에 없을 것이다.

´가장 힘들다´고 느꼈던 그 때보다 나는 지금이 더 힘겹다. 앞으로도 계속 ´가장 힘든 순간´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자신의 최상이 되라´는 저자의 말을 기억하려고 한다. 내가 통과한 결승선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임을 기억한다면,´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한 뒤 그래도 나아지지 못하는 것들과 화해하는 법´,´나의 과거와 맞서 거둔 사소한 승리를 자축하는 법´,´뒤뚱거리며´나아가는 방법을 배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저자는 물론이고, 매끄러운 번역으로 귀한 책을 만나게 해준 역자에게도 감사한다. 자신의 선택을 담담히 들려준 역자 후기를 읽으며, 이 책을 통해 인생을 들여다보는 기회를 가졌던 또 한 사람을 만난 것 같아 가슴이 뭉클해졌다.

안타까운 것은 책 겉장 디자인의 조악함이다. 말줄임표를 넣어 늘어지는 느낌을 주는 제목 디자인과 난삽한 겉장만 보고서는 선뜻 이 책을 사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 저자가 누차 강조했듯 ´달리기는 속도나 기록에 관계된 것이 아니라 사람의 일´이고 ´자신을 받아들이는 길´임을 말하는 책의 표지에 왜 목각인형이 달리는 그림을 넣었을까? 이해가 되질 않는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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