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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라져 가는 목소리들 |  | |
| 한 아프리카 원주민이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의 말이 이동 전화를 통하는 순간 우리말로 매끄럽게 번역되어 나타난다. ´나 어제 여자 친구랑 헤어졌다. 나 잘생긴 편 아니냐? 운운´ 그는 지구 반대편에 있는 한국인 친구와 자신의 언어로 아무런 거리낌 없이 통화하는 것이다.
물론 이는 어느 광고에 나온 가상 현실일 뿐 아직 실제 상황은 아니다. 문서 자동 번역 프로그램도 개발되었지만 아직은 일천한 수준일 뿐, 매끄러운 번역은 요원한 것 같다. 하물며 음성 인식 번역임에랴. 우리는 아직 외국인들과 의사소통을 자유롭게 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노력을 들여야 한다. 언제 다가올지 모르는 과학기술의 발전을 무작정 기다릴 수도 없다. 하지만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모든 지구인들이 한 가지 언어만을 사용하면 되는 것이다. 그럼 애써 번역 프로그램을 만들 필요도 없고, 번역의 문제 때문에 국가 간의 분쟁이 발생할 일도 없을 것이다. 참으로 편리하고 즐거운 지구가 되지 않겠는가.
그러나 이 책을 읽어 보면 그런 환상은 가차없이 사라져 버릴 것이다. 언어가 단지 의사소통의 수단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 속에 담겨 있는 토착 지식과 세계관은 어찌할 것인가?
세상에는 신기한 언어들도 많다. 우비크라는 언어는 자음이 81개나 되지만 모음은 단 3개 뿐이다. 파푸아뉴기니의 로토카스어는 6개의 자음과 5개의 모음 밖에 없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아프리카 어느 원주민 언어는 우비크어의 자음 보유 기록을 넘을지 모른다고도 한다. 어디 그뿐이랴. 힉사카리아나어는 목적어가 앞에 놓인다. 그네들 식으로 표현하면 ´책을 읽는다 나는´ 문장이 될 것이다. 아일랜드어는 동사가 앞에 나온단다. ´읽는다 나는 책을´ 영어는 ´나는 읽는다 책을´이 될 것이다. 세계에는 SVO, SOV, VSO, VOS, OSV 그리고 OVS의 어순을 가진 언어들이 모두 존재한다. 이는 단지 문법의 차이만이 아닐 것이다. 문장의 어느 부분이 앞에 놓이느냐 뒤에 놓이느냐에 따라 그들의 세계관과 그 중요성이 반영되는 것일 터이다.
이 책이 위와 같은 흥미거리만을 제공하지는 않는다. 이 책은 기본적으로 언어의 다양성이 인류의 생명과 환경의 보존을 나타내는 척도로 보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다양한 언어를 보유한 지역은 적도를 중심으로 분포된 아프리카, 미크로네시아, 중남미 지역이다. 그리고 이들 지역은 다양한 식생을 보유한 지역이기도 하다. 언어와 생명.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인가?
책은 우울하게 시작했다가 힘차게 끝맺는다. 앞부분에서는 소수 언어의 마지막 사용자를 소개하다가 결론 부분에서 소수언어를 보존하고, 할 수 있는 방법을 빠르게 나열한다. 물론 중간에는 소수 언어들이 어떻게 사멸하는지도 보여 주고 있다.
´언어의 생태학´
언어의 생멸은 언어 자체의 문제점때문에 비롯된 것이 아니다.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처한 여러 가지 사회 경제적, 정치적 상황에 영향을 받는 것이다. 그 중에서 가장 가슴 아프게 다가 왔던 부분은 경제적인 이유로 인한 자발적인 사멸이다. 한국에서 영어 열풍이 부는 이유도 사실 경제적인 이유 때문이 아닌가. 사람들은 경제적 혜택과 사회적 신분을 보장해 주는 언어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따라서 자신의 언어가 아무리 소중하다 하더라도 그것을 버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언어는 사라져 가는 것이고, 영어라는 ´지구 제국´의 언어가 세계를 점령하는 것이다.
언어와 생태계의 문제를 동시에 풀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원주민들에게 환경과 자원을 통제할 권리는 되돌려 주는 것이다. 너무 허황된 이야기인가? 실제로 그런 일들이 가능한 것인가? 지나친 환상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책은 그렇게 무책임한 책이 결코 아니었다. 실제로 여러 원주민 부족과 원주민 단체들이 자신들의 환경과 자원을 통제할 권리를 되찾았고 그 속에서 전통적 가치관과 현대사회의 이점을 누리면서 살고 있다. 결론 부분에서는 그런 여러 사례를 보여주고 있다.
희망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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