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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할말이 많아요 |  | |
| 약한 존재가 작은 존재를 위로하며
초등학교 시절 누구나 반항적이고 외곬수인 아이가 나오는 동화를 읽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 친구는 집안 환경이 좋지 않고 심술궂지만 알고 보면 따뜻한 심성을 가진 아이였고 여러 사건을 통해 점점 친해지고 어느날 그 아이가 병에 걸려 죽는다, 혹은 전학을 간다. 나는 뭐 대강 그런 내용으로 된 동화를 읽고 펑펑 울었고 책을 읽자마자 우리 반에 그런 애가 없는지 살펴봤다. 나는 동화 속 그 애보다 어렸음에도 불구하고 소년을 도와줄 수 있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을 실제로 이루고 싶었다.
어른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그 동화는 분명 자녀에게 좋은 영향을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저 애를 봐라, 지금의 너는 얼마나 행복하니, 저런 환경에서도 희망과 용기를 잃어서는 안되는 거란다, 해가면서 교훈을 주려고 작정할 것이다. 그렇지만 정작 당사자인 아이들은 그런 것을 배우지 않는다. 동화 속 그 아이와 같은 조건이 아닐텐데도 감정 이입은 쉽다. 부모의 이혼에 괴로운 아이를 보면 방과 후 엄마가 외출 나간 빈집을 갖다대면서 고통을 극대화하고 이야기에 빠진다. 또 그런 식으로 동정하는 법을 배운다.
열 네 살 소녀 마리나는 부부싸움 끝에 아빠가 실수로 던진 화학약품에 얼굴에 큰 상처를 입게 된다. 이 일로 아빠는 감옥으로 가고 엄마는 재혼해서 마리나를 멀리 떨어진 기숙사 학교에 보낸다. 마리나는 연이은 충격으로 말문을 닫아 버리고 마음의 문까지 걸어 잠그게 되지만 친구들과 선생님들의 관심과 격려가 소녀의 일기장에 채워질수록 세상은 밝은 빛으로 가득한 곳이 된다.
“린델 선생님이 어디선가 읽은 글을 우리에게 들려주셨다.
우리는 모두 기이할 정도로 혼자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유리벽을 통해 끊임없이 신호를 보내는 것은 중요하다.”(P.73)
아이들은 끊임없이 구조신호를 보낸다. 어떤 식으로든 누군가의 도움을 간절히 원한다. 그 애들은 심지어 자신을 낭떠러지에 몰아붙인 어른들에게까지 손을 내민다. 「할말이 많아요」에서 ‘어른’인 우리는 위로 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된다. 그것은 어쩌면 희망을 가진다는 것보다 더 중요하고 어려운 일일지도 모른다. 위로받기 위해서는 마음을 열어야 하고 위로하기 위해서는 그들을 이해해야 한다.
마리나는 스스로를 유령이라고, 살아있는 시체라고 생각한다. 이런 아이들은 묘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어 가까이 다가가기 정말 난감해진다. 괜찮다, 네 잘못이 아니란다 라며 꼭 끌어안아 주고 싶지만 아이는 제 주변에 빈틈없는 선을 긋고 있기 일쑤다. 어른이라면 당신 잘 살고 있어, 괜찮은 삶이었어, 라고 한 두마디만 해도 스스로 일어설 수 있는 힘이 있고 크게 울고 상대에게 기댈 뻔뻔스러움이라도 있지만 아이의 문제는 대부분 어른들이 만들어낸 것들이다.
세대와 국가를 뛰어넘어 모두에게 강하게 호소하는 이야기는 바로 아이들과 사랑을 주제로 한 것일 것이다. 존 마드슨은 영어 교사 출신의 호주 작가로 「할말이 많아요」와 「아버지를 물리쳐라」를 함께 내면서 방한한 적이 있다. 그때 그는 “어른들은 청소년의 말이 끝나기 전에 말을 막곤 합니다. 하지만 저는 청소년의 말을 귀담아 듣습니다.” 라며 자신의 창작 비결을 이야기했다. 나는 그가 특별한 능력이 있다고는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는 성장의 고통에 비명을 지르는 아이들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을 피하지 않았을 뿐이다.
중학교 3년 내내 나는 모두가 기피하는 아이를 옆 짝으로 맞았었다. 머리에 이가 기어다니거나 아빠에게 매질을 당하고 끔찍한 술주정을 견뎌내야 했던 애들, 병적인 거짓말쟁이로 혹은 말썽꾸러기로 낙인찍힌 날라리 아이들. 그들이 조용조용히 셔츠를 내려 목에 난 피멍을 보여주고 소매를 걷어올려 자해한 흔적을 보여줄 때도 나는 얼마나 무심했었던지…. 그네들은 아무 것도 선택한 적 없는 억울한 운명이었고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없는어린 영혼들이었다.가끔 내가 너무 무심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자책감이 들기도 했지만 이제 와 돌이켜보면 난 한없이 무력했었다. 아무도 관심 가져주지 않았던 자신에게 언제나 말을 걸어주고 이상한 눈길로 쳐다보지 않았던 건 마리나의 친구들이 꼭꼭 닫힌 마리나의 문을 열었던 방식과 놀랍게도 닮아있다. 아이들은 약한 존재가 작은 존재를 위로하며 저희들끼리 뭉친다. 마리아의 간절함이 작은 손길을 불러모았고 결국 스스로를 도왔듯이. (김은선 kong@libro.co.kr/리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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