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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시회에 간 예수, 영화관에 간 부처 |  | |
| 절대성의 미학
“신부는 사랑하는 사람의 목소리를 듣고 바깥으로 나간다. 그러나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을 불러도 그 사람의 옆에 도달할 수 없다. 사람들은 그녀가 도달할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하고 있다고 일깨워준다. 그리고 그녀가 사모하는 대상은 파악될 수도 없는 분이라고 말한다. 그녀는 자기 욕구의 좌절 때문에 상처를 입는다. 그러나 그녀의 번민의 베일은, 신랑을 향한 상승을 한순간도 쉬지 않고 지속한 데서 온다는 것을 깨달을 때에 벗겨진다.”(성 베르나르의 ‘아가주해’ 중에서)
인간의 ‘이성’이 지존의 자리에 올랐을 때, ‘신’은 사람들의 발 밑에 납작 엎드렸다. 다시는 고개를 들지 않을 것처럼, 다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것처럼.(물론 이는 당시 종교가 지닌 허구성의 필연적인 결과였다.) 헌데 어쩐 일일까. 밤만 되면 불을 밝히는 무수한 십자가와 관광지도를 메우고 있는 사찰들은……. 이번엔 ‘이성’이 나락으로 떨어진 것인가?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건 아닌 듯싶다.
종교라는 것은 궁극의 자리에서 보면 자기라는 문제와의 씨름이다. 그런데 근본적으로 자기를 향하지 않는 사람은 있을 수 없다. 때문에 인간이 멸종하거나 인식 능력을 잃어버리지 않는 이상 종교는 사라지지 않는다. 아니, 사라질 수 없다. 그렇다면 종교가 향하고 있는 대상, 즉 신은 어떤 존재일까? 예수일까, 부처일까. 이 책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제시하고 있다.
우선 저자는 신을 대상화된 존재자로 보지 않고 있음을 밝혀둔다. 자, 그러면 위의 질문을 다시 바꿔보자. 신의 본질은 무엇인가. 저자는 그림이나 조각품·도자기·연, 심지어는 커피와 같은 대상물과, 독서·머리 자르기·글씨 쓰기 등의 행위를 통해 대답한다. 사람들이 사용하는 대상물과 어떤 것에 집중하는 행위에는, 인간과 우주의 궁극적 실재로 가고자 하는 갈망이 담겨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궁극적 실재란 절대성, 영원성을 뜻한다. 때문에 저자에게 있어 예수와 부처는 다른 존재가 아니다. 광활한 우주와 가슴 벅찬 영원의 세계를 꿰뚫어보는 존재라는 의미에서 그들은 같은 본질 속에 있다. 단지 이름만 다를 뿐이다.
여기까지만 보면, 이 책의 이야기가 단순히 종교 다원주의를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저자는, ‘진선미’라는 고전적인 범주 속에서 신성을 표현하는 데 가장 위험시되어 왔던 ‘사랑과 아름다움’의 영역에까지 발을 내딛는다. 가령 고흐가 거리의 여자인 크리스틴을 사랑하고 결국에는 파국을 맞게 되는 과정을, “모든 인간적인 티끌이 녹아버린 순수함 그 자체”였다고 표현하고 있다. 즉 고흐 스스로가 “사랑이 죽었을 때 자비가 시작된다”고 말했던 것처럼, 인간적인 애욕이 끝난 자리에서 맑디맑은 무아(無我)의 사랑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자신의 욕망과 대상으로 분리되지 않는 사랑 자체인 사랑, 이것은 바로 예수가 말했던 ‘사랑’이고 부처가 말했던 ‘자비’의 본질이 아닌가!
“그리스도와 부처란 우리들의 참다운 모습이다. 그것은 나의 참다운 자기, 나의 부모가 태어나기도 전의 본래면목이므로 그를 만났다 해도 새삼스레 반가운 것도 없다. 그저 둘이 보며 말없이 미소 지을 뿐이다.”(p. 24)
결국 저자가 말하는 신성(神性)은 대상화된 신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 개개인의 내면-절대성과 영원성을 향하는 마음 그 자체에 있다. 피조물과 창조주의 경계, 중생과 부처의 경계를 지우는 곳에, 바로 그곳에 아름다움의 본질이 있다. 때문에 이 책은 종교인뿐만 아니라 사랑과 아름다움과 영원성을 갈망하는 모든 사람들이 읽어야 하는 책이다. ‘향기는 잃어버리고 공허한 이름만이 남은 장미’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황여정/리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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