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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너리티 리포트
미래에 대한 한 예지자의 회색 리포트
어느 날 애프터 서비스 직원이 당신 집 현관문을 두드리며 생전 듣지도 보지도 못한 ‘스위블’을 고치러 왔다고 한다. 혹은 갑자기 경찰이 들이닥쳐 미래의 범죄자라며 당신의 손목에 수갑을 채운다. 또는 어렸을 때부터 당신이 두려워하던 어떤 것, 이를테면 고소공포증 같은 것이 최근에 너무 심해져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내게는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고 웃어넘기기에는 너무나 끈적끈적하게 우리를 끌어당기는 상상의 시작. 그 시작에 필립 K. 딕의 소설들이 있다. 「마이너리티 리포트」를 읽고나면 호기심을 자극하는 게임 앞에서 기웃거리던 중, 순식간에 블랙홀속으로 빨려들어 긴장과 반전에 정신없이 헤매다가 겨우 겨우 빠져 나온 듯한 느낌이 든다. 그러나 그 안에서 빠져 나와 울렁거림을 가라앉히려 애썼을 때 찾아오는 것은 안도감이나 평화가 아니다. 그것은 그 안에 있을 때보다 더 극심한 혼란과 혼미, 그리고 섬뜩함이다.

필릭 K. 딕은 영화 ‘블레이드 러너’와 ‘토탈리콜’의 원작자이다. 총 8편의 중단편이 실린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표제작 ‘마이너리티 리포트’ 역시 현재 톰 크루즈가 주연하고 스티븐 스필버그가 감독하여 영화로 만드는 중이다. 미래를 다룬 많은 소설들처럼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소설들도 놀랍게 발전하는 과학과 예지력 같은 초능력이 인간이 당면한 여러 문제들을 해결해주면서 인간을 행복하게 할 것이라는 달콤한 환상에서 비껴간다.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 그려지는 미래의 세계는 하나의 이념만이 존재하거나(´스위블´), 전쟁으로 인해 나타난 잠재된 예지자들이 그 예지력에 의한 고통으로 정신 상담을 받고(´고소공포증에 시달리는 인간´), 화성에 파견되었던 이들이 복제되어 끊임없이 돌아오며(´우리라구요!´), 미리 범죄를 예측해 체포하기 때문에 범죄율 0%이지만 범죄를 저지르기도 전에 체포되기도 하는(´마이너리티 리포트´) 곳이다. 또 전쟁으로 모든 것이 폐허가 되고 화성인들의 구호물자를 받아 살아가는 인간들 사이에서는 풍요로웠던 과거를 재현하는 인형놀이가 유행하기도 한다.(´퍼키 팻의 전성 시대´) 로봇이 대통령직을 수행하고 인간은 로봇 곁을 지키다 그 로봇에 이상이 생기면 그때서야 임시로 일을 맡는다거나(´완벽한 대통령´), 전쟁중 외계에 스파이로 투입된 이들이 후유증으로 하루에 몇 시간씩 외계인으로 변하기도 한다.(´그래, 블로벨이 되는 거야!´)

글쓴이가 마치 미래 세계에 다녀 온 듯 생생하게 묘사하는 이처럼 기발한 착상의 소설에는 어김없이 전쟁이 등장한다. 그 전쟁과 대립을 해결하기 위해 인간은 발전된 과학이나 초능력을 이용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인간을 억압하고 더욱 혼란스럽게 만든다.

〈물거미〉는 우주 항해 프로젝트가 심각한 문제에 부딪치자 이를 해결하기 위해 과거로 돌아가서 예지자를 데려온다는 내용인데 재미있게도 그들이 예지자라고 생각했던 이들은 유명한 SF 작가들이다. 많은 SF 작가들이 실명으로 제시되는 이 소설은 예지자와 같이 미래를 정확히 꿰뚫어보는 작가의 통찰력을 유머러스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반면 나머지 소설들에서는 미래를 알아버린 이들의 고통과 혼란을, 특히 그 미래가 암울하고 암담하기에 더욱 배가 되는 고통과 혼란을 묘사한다. ‘고소공포증에 시달리는 사나이’에서는 예지력의 그런 속성을 암시하는 부분이 있다.

“사실, 예지력의 기미가 보이는 잠재자들은 무수히 많습니다. 아마 보유자의 수를 능가할 거예요. 하지만 우린 그 잠재자들을 일일이 훈련시킬 순 없어요. 한번 거리를 돌아다녀보십시오. 그 환자와 같은 사람을 적어도 십여 명 정도는 보게 되실 테니까요. 능력이 불완전하다면 활용 가치는 그리 높지 않아요. 오히려 당사자에게 성가신 골칫거리가 될 뿐이죠.” (p.58)

‘스위블’의 주인공 커트랜드는 수리공이 떨어뜨린 조그만한 메모를 통해 그가 주소를 잘못 찾다 못해 아예 과거로 와버린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아챈다. 우리는 그 커트랜드가 미래에서 온 수리공에게 질문을 던지기 위해 자신의 집 거실에 불러 모은 사람들과 다름없다. 지극히 예민해서 거의 예지력에 맞먹는 통찰력을 지닌 필릭 K. 딕은 우리를 그의 거실에 불러 모은 후 사소한 징후들을 캐어내 미래를 예측하는 게임에 동참하기를 요구한다. 비록 그 자리에서 예측한 미래가 말할 수 없이 끔찍하더라도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처럼 예언에 의해 미래는 또다시 달라질 수 있다. 우리는 그 무한한 가능성에 희망을 걸면 될 것이다. (윤정윤 phyllis@libro.co.kr/리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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