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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년기의 끝 |  | |
| 숙명론적인 시각이 지배하는 유년기의 끝
이 「유년기의 끝」을 비롯 「우주 오딧세이」「라마」등 모든 아서 클라크의 소설에선 마치 신 앞에 선 미약한 인간의 입장, 즉 절대 지성과 무한한 능력을 가진 창조주와 그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하찮은 인류의 입장이 되풀이 표현되고 있다. 전문적인 과학지식과 철학이 어우러져 묵시록적인 진지한 시선을 특징으로 하는 작품세계는 상당히 뛰어나고 그 묘미를 「유년기의 끝」에서도 볼 수 있긴 했지만 말이다.
특별한 주인공이 없이 스톰그렌에서 케렐런, 라샤베락과 잰 로드릭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시점으로 인류의 변화와 운명적 사건에 촛점을 맞춰 어느 날 지구 각 대도시 위에 나타난 외계 종족의 우주선과 그안의 오버로드들을 통해 인류의 미래에 대한 고민을 담아내고 있었다. 하지만 이 소설이 미ㆍ소 두 진영을 중심으로 한 냉전시대에 쓰여진 시간감의 차이 때문일까.?!
침입자인 오버로드들의 완벽한 통제 아래 인류는 몇 가지 반항을 시도하다 그들이 제공해준 온갖 편의와 안락에 물들어 유순한 인간이 돼버리고 지구엔 어떤 범죄나 분쟁 등 질서를 위협하는 일이 없는 유토피아가 건설된다는 발상은 거의 유아적이다. 더구나 그들의 압도적인 우주비행술에 기가 눌려 과학을 포기하고 종교도 버리고 예술에만 탐닉한다는 설정하에서의 인류는 무능하기까지 하다.
무력을 사용하지 않는 절대 지성과 권력자 아래 계도되는 아이 같은 인류, 유년기의 끝에서 지구인은 지극히 수동적이라 독자적인 미래조차 존재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게다 완벽한 종족인 오버로드들은 그들보다 더 높은 존재인 오버마인드의 명령에 의해 인류와 오버마인드 사이에서 중재자 역할을 하며 인류를 상대로 실험을 하고 있을 뿐이라는 게 후반에 밝혀지며 인류의 존재는 더할 수 없이 미미해진다.
그것은 오랜 역사를 통해 발전을 거듭해서 나름의 문명을 이뤘다고 자부하는 인류에게 그보다 더 나은 존재가 있다는 것을 주지시키며 겸손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지만 작가는 내내 너무나 관대한 외계의 지성종족에 촛점을 맞추는데 반해 인류를 향한 불안한 시선은 거두지 않고 있다.
외계인들 지배 하에 유례없는 평화와 안락을 누리는 지구엔 그 반대급부로 비젼도 구심점도 없다가 제목처럼 지구는 유년기를 끝내고 질적으로 다른 신인류의 등장으로 위기와 종말을 맞고 있다.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기존 인류와는 아무런 공통점을 찾을 수 없는 아이들이 그 주인공이다. 이 갑작스럽고 당황스러운 설정에 놀라고 있을 새도 없이 지구의 모든 것이 종이조각처럼 먼지화 되는 것을 유일하게 목격하는 최후의 인간 잰 로드릭스의 장엄한 종말의 미화와 캐렐런의 연민만이 남아있는 후반부는 당황스럽다.
SF물이 그렇듯이 과학적인 발판을 통해 미래의 한 면을 엿볼 수 있었고 인류의 미래에 대한 고민과 성찰을 시종 진지한 문제로 담아내고 있어 쉽지않게 읽긴 했지만, 고등문명에 의해 연구대상으로만 존재하는 지구의 모습은 알 수 없는 미지의 우주에 대한 작가의 두려움이 유난히 돋보였고 숙명론적인 세계관이 지배하고 있어 읽어나가는 내내 불편함이 없지 않았다.
by www.libro.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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